[자동차]
재규어 F-타입

재규어는 창업 초기 레이스 시상대를 휩쓸며 이름을 알렸다. 게다가 디자인이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재규어의 브랜드 슬로건, ‘Beautiful Fast Car’는 이 같은 전통에 뿌리를 뒀다. F-타입은 재규어 스스로의 다짐에 가장 잘 부합하는 스포츠카다. 리듬감 넘치는 비율과 날카로운 디테일처럼, 운전 감각 또한 강렬한 기억을 남긴다.

내용

 


재규어 F-타입 SVR 쿠페 주요 제원

길이×너비×높이 4,475×1,923×1,311mm

ENGINE 형식 V8 가솔린 직분사 슈퍼차저 배기량 5,000cc

TRANSMISSION 형식 8단 자동 구동방식 앞 엔진, 네 바퀴 굴림(AWD) 연비 7.5km/L(복합)

PERFORMANCE DATA 최고출력 ​575마력/6500rpm 최대토크 71.3kg.m/rpm 0→100km/h 가속 3.7초 최고속도 시속 322km 승차정원 2명 ​가격 2억1700만원



창백해진 얼굴에 동공은 흔들흔들. 트랙에서 고성능 재규어를 몇 바퀴 타본 이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굳이 말하진 않지만 이유는 빤하다. 생각보다 다루기 어려워서, 예상보다 터프해서, 그런데 또 부드러워서. 결론은 명확하다. 처음엔 적응이 어렵다. 자상하고 친절한 요즘 차에 길들여진 이에게, 고성능 재규어 시승은 반전으로 점철된 깜짝쇼일 수 있다.


특히 서킷에서 거칠게 재규어를 몰다 척추가 찌릿한 상황을 한 번쯤 겪은 이들은 대뜸 애꿎은 차를 탓한다. “롤이 심하다”든지 “반응이 신경질적”이라면서. 그런데 경험이 쌓이면 반응이 180° 바뀐다. 도전의식과 탐구정신을 불태우게 된다. 재규어는 정직하기 때문이다. 다루는 실력만큼 덤이나 에누리 없이 보여준다. 과장된 스릴, 계산된 재미와 거리가 있다. 


재규어 F-타입 테일램프.



뼛속 깊이 각인된 레이싱 DNA
가령 재규어는 비슷한 성능의 라이벌보다 승차감이 부드럽다. 버티다 무너지고 이쪽저쪽 옮겨 다니는 롤을 읽으며 섬세히 다뤄야 한다. 때문에 잠재력의 밑바닥을 쉽게 확인하기 어렵다. 스포츠카에 대한 독일인과 영국인의 극명한 시각 차이를 보여준다. 그래서 체감하는 재규어의 한계는 제각각이다. 시내에서 곱게만 몰아선 결코 알 수 없는 특징이기도 하다.


재규어는 이처럼 말쑥한 외모에 상상하기 힘든 반전이 숨어 있다. 바로 ‘레이싱 DNA’다. 재규어는1951년과 1953년 C-타입을 앞세워 프랑스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에서 우승을 거뒀다. 1955~1957년엔 D-타입으로 3년 연속 우승컵을 싹쓸이했다. 주최국 프랑스뿐 아니라 페라리와 알파로메오를 납작 눌러 이탈리아인의 자존심에 피멍을 들인 주역이었다. 재규어의 레이싱 역사는 1948년 XK120부터 싹을 틔웠다. 최고속도 시속 200km로 당시 ‘가장 빠른 양산차’로 이름을 올렸다. XK120은 스포츠카에 대한 인식을 뒤바꾼 ‘이단아’였다. 당시만 해도 경주차와 스포츠카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았다. 스포츠카는 달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차였다. 반면 XK120은 달랐다.


성능이 뛰어나면서도 실내가 조용했고, 승차감이 매끄러웠다. 여성 운전자도 쉽게 다룰 수 있을 만큼 스티어링도 부드러웠다. XK120은 편안하게 장거리 주행에 나설 수 있는 차를 뜻하는, ‘GT’ 즉 ‘그랜드 투어러’의 개념을 정립한 주인공이었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속칭 ‘가성비’가 갑이었다. 당시 시속 200km 내는 차의 삼분의 일 수준에 불과했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재규어는 귀족을 위한 차가 아니었다. 그건 롤스로이스와 벤틀리의 몫이었다. 재규어는 귀족은 아니되 부유한 지주인 젠트리 계급을 노렸다. 젠틀맨이 여기에서 나온 용어다. 그래서 재규어는 레이스로 입증한 압도적 성능을 담되 결코 터무니없는 가격을 매기지 않았다. 오늘날 국내에서 재규어 브랜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과거인 셈이다.


그렇다고 재규어가 합리적인 고성능 차만 만들진 않았다. 1988년 영국 버밍햄 모터쇼에서 공개하고, 1992년 팔기 시작한 XJ220이 좋은 예다. V6 3.5L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을 얹고 뒷바퀴를 굴렸다. 0→시속 100km 가속 3.8초, 최고속도 시속 350.8km로 당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차였다. 페라리 F40, 포르쉐 959, 람보르기니 카운타크를 정조준했다.


F-타입은 재규어가 1961~1975년 생산한 E-타입의 후손이다. 재규어의 슬로건인 ‘아름답고 빠른 차’에 가장 잘 부합하는 차종이다.


​F-타입의 비율을 보고 있으면 리듬을 느낄 수 있다. 그릴에서 우아하고 느리며, 길게 이은 흐름을 쫑긋 솟은 꽁무니에서 돌연 끊어냈다.


​야성적인 재규어 명맥 잇는 F-타입
영국 자동차 전문지 <오토카>에 따르면, XJ220과 관련해 놀라운 뒷이야기가 있다. XJ220은 재규어 엔지니어가 회사의 지원 없이 몰래 개발한 차다. 엔지니어 12명의 재능기부로 완성했다. 버밍햄 모터쇼를 2주 앞두고, 이들은 당시 재규어 회장 존 이건에게 공개했다. 재규어 임원들은 만장일치로 모터쇼 출품을 결정했고, 개막날 40명이 계약금을 걸었다.


그사이 포드가 재규어를 인수했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했다. 1992년 인도를 시작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콘셉트카는 V12 엔진과 사륜구동의 조합. 반면 양산 XJ220은 V6 트윈터보 엔진을 얹고 뒷바퀴만 굴렸다. ‘세계 최고속 양산차’ 영예에도 불구하고 항의가 빗발쳤다. 일부는 소송에 나섰다. 결국 재규어는 1994년 XJ200 생산을 중단했다.


2011년 재규어는 또 다른 스포츠카의 청사진을 선보였다. 재규어 창사 75주년을 기념하는 모델이었다. 직렬 4기통 1.6L 엔진에 터보와 슈퍼차저를 붙이고, 전기 모터 두 개를 더해 사륜구동을 완성하는 동시에 850마력을 뿜었다. 성능은 환상적이다. 0→시속 100km 가속이 3초 미만, 최고속도는 시속 354km.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양산하지 못했다. 
다행히 재규어는 현실적 대안을 준비 중이었고 2013년 예정대로 선보였다. 바로 F-타입이었다. 이 차는 재규어가 1961~1975년 생산했던 E-타입의 후손이다. 현재 재규어의 슬로건은 ‘아름답고 빠른 차(Beautiful Fast Car)’. E-타입의 특징을 오롯이 함축한 표어나 다름없다. 반세기 전 나온 E-타입은 넋을 잃을 만큼 우아하면서도 가슴 철렁하게 빨랐다. 이후 재규어는 수많은 차종을 내놨다. 그러나 브랜드 슬로건에 실질적으로 100% 부응하는 모델은 XJ200 이후 F-타입이 처음이다. 그만큼 의미가 남다른 스포츠카다. F-타입의 디자인은 과연 E-타입의 후예답다. 옆모습 실루엣을 보면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가령 엔진을 품은 보닛은 느린 호흡으로 기다랗게 뽑았고, 힙은 스타카토처럼 짧게 끊어 올렸다.


그러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여성성 강한 E-타입과 달리 F-타입은 팽팽한 근육 불거진 상남자다. 헤드램프와 테일램프 모두 풀 LED다. 가늘게 빚어 으스스한 느낌이다. F-타입은 현재 재규어가 거느린 차종 중 덩치가 제일 아담하다. 하지만 재규어가 핵심 라이벌로 손꼽히는 포르쉐 911보다 길이만 39mm 짧을 뿐 휠베이스와 너비 모두 성큼 웃돈다. 


​운전감각은 격렬한데 승차감은 상대적으로 부드럽다. 재규어답게 운전석 레그룸이 상당히 깊다.
 



승차감 편안하되 운전감각은 강렬해
재규어 F-타입은 과거 E-타입처럼 쿠페와 컨버터블 두 가지로 나온다. 또한, 굴림 방식은 모델에 따라 뒷바퀴 또는 네 바퀴다. F-타입은 V6 3.0L와 V8 5.0L 가솔린 슈퍼차저 엔진을 얹는다. V6는 모델에 따라 340과 380마력, V8은 550과 575마력을 낸다. 최근 재규어는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엔진을 얹고 300마력을 내는 P300 쿠페를 더했다.


변속기는 독일 ZF의 자동 8단이다. 재규어는 ‘퀵 시프트’라고 부른다. 달리기에 집중한 스포츠카답게 파격을 자제하고 원칙에 충실했다. 변속기 조작 방법이 좋은 예다. 스티어링 휠 뒤쪽의 패들 시프터나 센터 터널의 짜리몽땅한 변속 레버로 조작한다. 시동 걸면 솟아오르는 로터리 다이얼을 빙빙 돌려 기어 고르는 나머지 재규어와 뚜렷이 구분된다.


실내는 철저히 운전자 중심으로 디자인했다. 시트는 초경량 소재인 마그네슘 프레임으로 무게를 극적으로 덜었다. 동시에 입체적인 디자인으로 지지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몸을 지나치게 옥죄지 않아 편하다. 스티어링은 밑변을 평평히 다진 D컷. 여느 재규어가 그렇듯 다리 공간이 퍽 깊다. 시동은 리모컨 키를 몸에 지닌 채 버튼만 눌러 건다. 그러면 엔진이 우악스러운 포효와 함께 숨통을 튼다. 사운드는 V8보다 V6가 더 강렬하다. 고막이 쉴 새 없이 떤다. 가속 페달에서 발 뗄 때마다 F-타입 꽁무니에선 ‘우당탕탕’ 따발총 소리가 작렬한다. 미처 연소되지 못한 연료가 달아오른 배기관 속에서 폭발하는 소리다. 반대로 가속 페달 밟으면 맑은 관악기 소리가 높게 울려 퍼진다.


운전감각엔 싸움판에서 갈고닦은 레이싱 헤리티지가 묻어난다. 가속페달을 섣불리 밟으면 꽁무니를 슬쩍슬쩍 흘린다. 너무 빠르게 코너에 진입하면 약한 언더스티어를 낸다. 역시 재규어다. 고유의 진동수를 감지해 호흡을 맞추기까지 얼마간의 시행착오가 뒤따른다. 하지만 일단 리듬을 타고 나면 F-타입은 짜릿한 성취감과 궁극의 몰입감을 안겨준다. 재규어 F-타입은 동급 어느 스포츠카보다 매끈한 승차감을 뽐낸다. 그래서 재규어와 함께하는 트랙 주행은 격렬한 스포츠와 거리가 멀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놀이다. 정장을 갖춰 입고 몰아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하지만 소위 ‘귀족을 위한 차’처럼 가격이 허황되지 않다. 스포츠카의 민주화, 대중화를 이끈 60년 전 E-타입처럼.


실내 디자인과 설계의 중심은 철저히 운전자다. 시트는 마그네슘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무게를 덜었다. 아담한 지름의 스티어링 휠을 쥐면 서늘한 긴장이 밀려든다.

문의 재규어 080-898-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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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F-타입#Jaguar#F-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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