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s
손목시계 시장의 미래
현재의 시계 시장은 고도 성장 중이다. 전통 시계 제작 방식을 고수하는 동시에 신기술, 신소재 개발에 열정을 쏟는다. 이러한 노력은 100여 년간 이룩한 손목시계 역사에 힘을 더한다.
세계는 빠르고 복잡하게 변하고 있다. 시계 역시 마찬가지다. 1990년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다. 동시에 더 많은 소비자의 보다 많은 요구를 충족해야 한다. 사실에 입각한 몇 가지를 나열하면, 시계 그룹화는 2000년대 들어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글라슈테 오리지날, 자케 드로, 로저 드뷔, 위블로 등의 많은 메이커가 그룹에 속하게 된다. 보통의 소비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회사들. 시계 부품 메이커 역시 차례로 매각되고 매수되며 그룹의 덩치는 더욱 커진다. 즉 그룹에 속한 메이커와 독립 경영을 하는 메이커로 양분화되는 추세다.
2000
샤넬 J12
새 밀레니엄 시대에 맞춰 탄생한 J12는 새로운 소재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샤넬이 발견한 귀금속이라 부를 만큼 세라믹에 대한 이들의 접근은 무척 강력했다. 물론 샤넬이 가진 강력한 브랜드 파워가 뒷받침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세라믹 고유의 질감과 색감을 내세워 케이스, 브레이슬릿 전면에 사용한
J12는 샤넬 워치에 대한 인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동시에 다른 메이커들로 하여금 세라믹을 대중적인 소재로 인식하는 역할을 했다.
이와 달리 시계 제작의 트렌드를 읊는 건 쉽지 않다. 투르비용 생산이 붐을 이루기도 했고, 시계의 지름이 대폭 커진 오버사이즈 워치가 유행하며 하나의 사이즈로 자리 잡기도 했다. 2000년대 접어들며 오데마 피게와 바쉐론 콘스탄틴과 같은 하이엔드 메이커를 필두로 인 하우스 무브먼트가 재생산되고, 이는 다양한 메이커에게 영향을 미친다. 독점 무브먼트를 보유하기 시작한 것. 이런 능력을 갖추지 못한 메이커는 ETA의 공급 제한이라는 통제를 따라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기능적으로는 자동 크로노그래프가 전성시대를 맞이했다고 할 만큼 다양한 인 하우스 자동 크로노그래프가 생산된다. 디자인은 더욱 정의하기 어렵다. 수십 년의 전통을 지닌 모델은 그 가치를 고수한다. 한편 아르데코, 바우하우스 등 20세기 초반의 디자인과 퓨처리즘처럼 현재의 트렌드를 포함한 시계들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여기 신소재의 발견은 이들 시계 제작을 수월하게 만든다. 신소재는 외장 부품뿐 아니라 무브먼트 개발에도 쓰이며, 실리시움이 그 대표라 할 수 있다.
2001
리차드 밀 RM001
2000년대 들어 가장 강렬하게 등장한 브랜드를 말하라면 리차드 밀이다. 그만큼 독보적인 시계를 선보였다는 얘기다. 리차드 밀은 그의 첫 번째 시계 RM001을 통해 기계식 시계의 고정관념, 기능의 한계, 새로운 형태를 통한 새로운 디자인을 보여주게 된다. 3차원의 토노 케이스는 이러한 형태의 케이스 중 모범이 될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그 속에 담긴 리차드 밀의 자유로운 콘셉트는 그동안 새로운 형태의 시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갈증하고 있었는지 대변했다. 리차드 밀이 단기간에 이룬 성공은 이와 비슷한 형태의 시계를 양산케 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여전히 ‘리차드 밀’이라는 장르에서 이 브랜드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2004
파르미지아니 부가티 타입 370
‘왜 무브먼트는 수평으로 배치되어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이 긴 시계 역사에 아무도 없었을까? 물론 아니다. 단지 이를 현실화한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시계 복원가 파르미지아니가 이를 실현했다. 그가 고안한 부가티 타입 370과 그 무브먼트는 수직 연결에 의해 태어났다. 마치 자동차의 트랜스미션을 보는 것처럼,
배럴에서 기어트레인, 밸런스까지 도달하는 부품이 서 있다. 원통형 케이스로 완성된 부가티 370은 시계를 착용한 상태에서 스티어링 휠을 쥐고도 시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부가티의 괴물 같은 출력을 다스리려면, 손목을 돌려 시간을 확인할 잠깐의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2005
브레게 라 트라디션 Ref.7047BA
라 트라디션. 전통을 뜻하는 이 컬렉션은 이전까지 브레게가 브레게답지 못한 시계를 만들고 있었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스와치 그룹에 인수되기 전의 인베스트코프 아래에서, 브레게는 위대한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의 복제만 반복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이에크의 지휘 아래 내놓은 라 트라디션은 브레게의 부활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멋진 ‘오리지널’을 완성했다. Ref.704은 이 컬렉션 결정판의 하나로 퓨지&체인, 거대한 케이지의 투르비용이 특징이다. 단순히 옛 기술을 사용했다고, ‘오리지널’이 아니다. 현대적 소재와 기술이 있었기에 ‘오리지널’이라 부를 수 있는 거다.
2008
프레드릭 콘스탄트 하트비트 매뉴팩처 Ref. FC-980EGF4H9
실리시움 사용에 주도적인 스와치 그룹과 파텍 필립 이외에 실리시움 부품을 사용하는 메이커로는 지라드 페리고, 프레드릭 콘스탄트를 열거할 수 있다. 프레드릭 콘스탄트를 제외하면 대부분 하이엔드 급이거나 덩치가 큰 메이커라는 점은 이들에게 큰 장점이다. 이 브랜드가 실리시움 기술에 대한 협력을 얻는 나라는 프랑스다. CSEM에 개발된 기술을 응용하고 있는 다른 메이커와 다른 점이다. 실리시움 기술을 응용한 이스케이프먼트는 가장 진보한 시계 기술을 의미한다. 한편 다이얼은 전통기법 중 하나인 그랑푀 에나멜링으로 제작되었다. 이는 전통과 현재의 균형을 도모하려는 의지의 산물이다.
2011
피아제 엠퍼라도 쿠썽 울트라신 오토매틱 투르비용
울트라 슬림을 향한 열정은 2011년 SIHH를 통해 발표한 이 시계를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피아제는 과거 수동 칼리버 9P, 자동 칼리버 12를 통해 울트라 슬림으로의 진입을 꾀했고 좋은 성과를 얻어냈다. 많은 메이커가 사업성이 좋지 않은 울트라 슬림을 포기하거나 포기하려던 무렵, 피아제가 내놓은 것은 12P를 계승한 칼리버 1200P 시리즈와 울트라 슬림 투르비용인 엠퍼라도 쿠성 울트라신 오토매틱 투르비용 모델이었다. 이들이 울트라 슬림을 위해 공통적으로 택한 것은 마이크로 로터였다. 그리고 투르비용에서도 분명한 성취를 이뤄냈다. 울트라 슬림의 집념을 불태운 피아제가 없었더라면, 다른 울트라 슬림 모델들도 모습을 다시 드러낼 기회를 얻지 못했을지 모른다.
2012
해리 윈스턴 오푸스 12
주얼러로서 명성을 떨치던 해리 윈스턴이 하이엔드 워치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는 오푸스를 통한 시선 집중이었다. 첫 오푸스는 프랑수아 폴 쥐른이 제작했다. 이후 비아니 할터, 앙트완 프레지우소와 같은 쟁쟁한 인물에게 오푸스의 제작을 맡긴다. 이들의 네임밸류가 컸지만, 결국 해리 윈스턴은 주목받는 데 성공한다. 시리즈의 열두 번째인 오푸스 12는 올해 바젤월드를 통해 선보였다. 이 컬렉션이 의도했든 아니든, 독립적으로 시계를 제작하는 사람들(AHCI의 멤버가 아니더라도)의 오푸스에 대한 관심은 높다. 그리고 이들이 만드는 유니크 피스의 관심도 덩달아 올라간다. 시계 선진국이라 불리는 싱가폴 시장에는 이러한 유니크 피스가 유행 중이다. 이는 앞으로의 시계 시장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힌트다.
세이코 GPS 아스트론
세이코의 쿼츠 손목시계 아스트론의 이름을 가진 GPS 아스트론은 최초의 이 컬렉션이 추구한 궁극의 정확성을 실현했기에 붙은 이름이 아닐까 싶다. 그간 쿼츠의 실용성 모색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나타났고 대표적인 예가 카시오의 지-쇼크, 시티즌의 전파수신시계, 솔라 패널을 통한 태양광 충전이다. 세이코가 올해 선보인 GPS 아스트론은 GPS 수신을 통한 동기화가 포인트다. GPS 위성이 발신하는 전파를 받을 수 있다면 세계 어떤 곳의 땅을 밟자마자 그곳의 시간을 정확하게 표시하며 오차 보정 역시 가능하다. 쿼츠의 최종 진화형이라 할 수 있다.
태그 호이어 마이크로거더
기계식 시계를 통해 측정의 한계치를 돌파한 마이크로거더는 무려 1/2000초의 측정이 가능하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동그란 밸런스를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접근을 해야 했다. 전자 기술인 쿼츠 시계의 도움을 받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가능한 일을 굳이 기계식으로 이루려고 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태그 호이어의 대답은 이럴 듯하다. ‘측정이야말로 스스로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거더는 한계를 넘어서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데에도 목적이 있지만, 최근 시계 만들기의 한 흐름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기계식 시계는 예전에 비해 더욱 R&D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고,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게재호
21호(2012년 07/08월)
글
구교철(타임포럼 편집장)
Editor
크로노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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