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석 총괄, 바이버 랩스 진단팀
롤렉스, 오데마 피게, 리치몬트 코리아 등에서 경력을 쌓은 감정 진단 전문가.
“비중으로 따지면 롤렉스가 가장 많다.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높은 만큼 가품 판매량도 어마어마하다.”
시계 업계에서 어떻게 커리어를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우연히 연이 닿았다. 첫 번째 커리어는 백화점 스포츠 브랜드였다. 이후 우연한 기회로 롤렉스에 합류하게 됐다. 자연스레 시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오데마 피게와 IWC에서 경험을 쌓았고, 롤렉스로 다시 돌아와 바이버에 합류하기 전까지 근무했다. 첫 업무는 세일즈 쪽이었는데 점차 A/S 업무를 겸하게 됐다. 무브먼트를 직접 분해하고 조립하는 훈련을 했고, 재미를 느꼈다. 지금은 바이버 진단팀을 총괄하며 제품 진단과 검수, 촬영 등을 관리하고 있다.
바이버는 중고 시계가 들어오면 시계를 진단하고 있다.
진단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가품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고객들이 개인 간 거래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시계를 잘 안다고 해도 자세하게 살펴볼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 명은 돈을 들고, 다른 한 명은 시계를 들고 만나 긴장한 상태로 시계를 살펴보다 보니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둘 다 좋은 사람이라 거래가 원활히 이뤄지기도 하지만,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바이버는 이런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고자 한다. 정·가품 여부부터 컨디션 체크까지 모두 바이버 내부에서 진행하다 보니 판매자도 구매자도 크게 걱정하지 않고 거래를 진행할 수 있다.
진단은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나.
내부에 바이버 랩스를 두고 있다. 그 아래에 진단팀과 엔지니어팀이 있다. 진단팀은 시계 입고부터 출고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품화 과정을 담당한다. 시계가 입고되면 정·가품 여부를 우선 확인하고 제품 상태를 살펴본다. 이후 워치메이커와 폴리셔로 구성된 엔지니어팀이 무브먼트 이상 여부와 시계 내부 컨디션을 체크한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나야 제품을 판매한다.
실제로 가품을 발견한 적이 있나.
종종 있다. 가품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가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객들도 가품인 걸 알았다면 바이버에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선물을 받아 진품이라 생각하고 사용했는데 알고 봤더니 가품인 경우가 꽤 있었다. 부분 가품도 있다. 일부 파츠가 소실되거나 파손됐을 때 정품이 아닌 가품으로 교체한 경우다. 가품은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된다. 물론 가품은 언제나 있었지만, 최근 나오는 제품은 퀄리티가 상당하다. 시장 자체가 이미 고도화됐고 위조 자체도 치밀하게 이뤄지다 보니 시계를 정말 잘 아는 게 아닌 이상 판별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일반인이라면 가품 판별이 어려울 수 있다. 바이버에서는 내부에서 직접 가품을 구입해 분해도 해보며 디테일하게 공부하고 있다.
가품이 가장 많은 시계는 역시 롤렉스일까.
비중으로 따지면 롤렉스가 가장 많다.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높은 만큼 가품 판매량도 어마어마하다. 많이 팔릴수록 가품 제작사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합리적으로 카피하고 판매도 보장된 브랜드인 셈이다. 물론 다른 브랜드도 가품은 존재한다. 바이버에 들어왔던 제품 중에는 튜더 가품도 있었다. 오데마 피게, 파텍 필립, IWC, 예거 르쿨트르 등 모든 시계 브랜드 제품은 가품이 있다.
커스텀 제품을 맡기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커스텀 제품이라도 원상 복구가 가능하다면 취급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루지 않고 있다.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커스텀 모델이 들어온 적 있다. 판매자가 직접 베젤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했다고 한다. 정중하게 거절했다.
바이버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매장에서 공식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여부로 판단한다. 구매자 입장에서는 시계를 사용하다 수리를 맡겨보려 했는데 거절당한다면 온전하게 상품의 가치를 누리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경험 자체가 불쾌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저희 쪽에서 서비스받는 건 가능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공식 서비스 접수가 가능하고 정상적으로 수리되는 상태의 제품이 그 가치가 온전히 반영될 수 있다. 물론 커스텀 문화를 배척하는 건 아니다.
다만, 저희는 바이버를 통해 판매된 제품은 이후에도 두세 번 더 판매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품 가치가 이견이 없을 정도로 유지돼야 한다. 바이버에서 커스텀 제품을 적극 취급하는 건 아직 이르다고 보고 있다.
시계를 진단하며 무브먼트도 확인한다고 들었다.
정·가품 여부 확인뿐 아니라 시계 내부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중고 시계다 보니 관리가 잘 안될 경우 방수 성능이나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 면밀하게 파악하기 위해 시계를 열고 무브먼트와 오일 주유 상태 등을 살펴보고 있다. 가끔 파츠가 파손되거나 손실된 경우도 있다. 시계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에는 바이버에서 자체적으로 업그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다. 기본적인 컨디션을 복구하는 상품화 과정이기도 하다. 동작이 안 되거나, 시계가 멈춰 있거나, 오일이 말랐거나, 오버홀이 필요한 경우 모두 바이버에서 직접 수리하고 있다. 바이버 랩스의 워치메이커와 폴리셔 모두 브랜드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분들이다. 시계를 신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걸 목표로 두고 작업한다.
바이버 랩스는 어떤 부분에서 다른 곳과 차별화된다고 생각하는가.
시계를 진단하는 곳은 많다. 바이버 랩스는 브랜드 노하우를 갖췄다는 게 가장 큰 차별점이다. 진단팀, 엔지니어팀 구성원 모두 시계 브랜드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며 제품을 만져봤다. 노하우는 정·가품을 감별할 때 특히 중요하다. 브랜드 공식 매장에서 근무할 때 가장 많이 들어오는 문의 중 하나도 정·가품 확인법이었다. 정품을 많이 만져보면 가품을 찾아낼 수 있다. 촉감도 다르고, 마감 때문에 색감이 다를 수도 있다. 무게감과 조작감이 다른 경우도 있다. 이미 오랜 기간 브랜드에서 근무하며 노하우가 많이 쌓였다. 그리고 계속 공부하고 있다.
확실히 브랜드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브랜드에서 근무했다는 건 그 브랜드의 기본적인 정책과 제품 상태를 이미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계가 출고되는 과정을 이미 알고 있다. 시계에 어떤 특장점이 있는지, 가품 여부를 확인하려면 어떤 부분을 봐야 하는지 등 여러 지식이 쌓였다. 이 상태에서 시계를 바라보는 건 조금 더 유리한 지점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워치메이커와 폴리셔도 모두 브랜드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다. 한 브랜드에 있었던 분도 있지만, 대부분 여러 브랜드의 시계를 다룬 경험이 있다.
스위스 본사에서 정식으로 교육을 받거나 라이선스를 받은 분들을 바이버에 모두 모셔왔다. 단순히 브랜드 소속으로 상품을 다뤄본 수준이 아니라, 전문적인 이해도가 있는 분들이다.
결국 진단이 바이버 서비스의 핵심이겠다.
그렇다. 단순히 일반 커머스처럼 거래량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더라면 지금처럼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바이버 랩스는 바이버의 핵심이다.
쇼룸과 앱에서 판매하고 있는 상품을 100%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게끔 진단하고 있고, 그런 제품들만 내놓는다.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타협하지 않는다.
자존심을 걸고 진단하다 보니, 바이버에서 사면 백화점에서 사는 것만큼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기준점이 너무 높고 깐깐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오히려 중고 거래의 문턱을 높이는 느낌일 수도 있다.
저희는 기준을 계속 지키고 있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시너지가 나고 있다. 이 기준을 내려놓지 말자, 타협하지 말자고 했던 부분이 쌓이고 쌓여 지금도 영향을 주고 있다.
“시계를 진단하는 곳은 많다. 바이버 랩스는 브랜드 노하우를 갖췄다는 게 가장 큰 차별점이다.”
중고 제품을 진단하며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정·가품 판별 이외에는 상품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데 신경 쓰고 있다. 미착용 제품과 중고 제품을 겸하고 있다 보니 착용 여부를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 미착용 제품을 구매하려는 분들께는 그게 가장 중요할 테니 말이다. 착용 제품을 미착용 제품이라고 기입하여 보내는 분들이 종종 있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고객들은 사실상 누군가 착용했던 제품을 구매하게 되는 셈이다. 특별히 더 신경 써서 보고 있다. 착용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많지만, 뭉뚱그려 ‘사용감’이라 표현할 수 있겠다. 악용 가능성이 있어 외부에 밝힐 수는 없지만,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점과 근거가 있다.
제품을 착용하면 분명 흔적이 남고, 몇 가지 검사를 통해 미착용 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체크한다. 실제 미착용 제품인데도 기준에 넣을 수 없었던 제품도 있다. 예를 들어 골드 제품은 지문이 묻은 채로 오랜 기간 보관하면 산화되며 변색되거나 얼룩이 진다. 강제로 폴리싱하거나 세척하지 않는 한 복구가 어렵다. 폴리싱하거나 세척하는 자체가 미착용 기준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판매자분께 잘 말씀드려 중고 제품으로 판매한 적이 있다.
시계를 진단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언제인가.
아무래도 까다로운 가품을 걸러내어 거래의 신뢰도를 높일 때 희열을 느낀다. 완전한 가품은 쉽게 찾아낼 수 있지만, 부분 가품은 어려운 편이다. 특히 다이얼을 개조하면 일반인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다이얼 컬러를 바꾼다든지, 다이아몬드를 세팅한다든지, 따로 제작한 베젤을 붙인다든지. 시계에 대한 조예가 깊거나 특수 장비가 있는 게 아니라면 찾아낼 수 없다.
최근 해외 거래도 시작했다. 해외 거래의 경우 어디에서 진단을 진행하는가.
모두 한국에 있는 바이버 랩스에서 진행한다. 지금은 해외 거래 초기 단계로, 국내에 있는 상품을 해외에서 구입할 수 있게끔만 준비해 놨다. 관세 등의 문제로 해외 거래를 완전히 풀어내지는 못한 상황이다. 앞으로 해외 상품을 국내로 수입하는 방향과, 미국에 있는 상품을 홍콩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단계적으로 해외 거래를 늘려갈 예정이다.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아 1단계만 진행했고, 바이버 랩스에서 일괄적으로 상품을 검수하고 있다.
바이버 랩스의 목표가 궁금하다.
유저들이 신뢰하고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게 첫 번째 숙제이자 목표다. 중고 거래 업체는 많지만, 신뢰성 측면에서 확연하게 차별점을 두고 싶다. 바이버가 시계를 생산하거나 소싱하는 건 아니지만,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 만족하고 믿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
게재호
97호(03/04월호)
Editor
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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