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허상인가, 훌륭한 디자인의 재해석인가, 소비 시장에서 듀프(Dupe) 트렌드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듀프는 복제나 유사품을 뜻하는 영어 단어 ‘Duplicate’에서 유래했다. 고가 제품과 유사하지만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한 대안 제품을 지칭한다. 듀프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2010년대 초반부터 뷰티 커뮤니티와 소비자 리뷰 중심의 디지털 플랫폼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듀프는 위조품이 아니다. 로고와 브랜드를 복제하는 위조품과 달리, 듀프는 고급 제품의 디자인이나 특징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며 정당한 브랜드 아래 생산된다.
Genuine Leather Handbags Purse for Women ⓒwalmart
뷰티 분야에서 시작된 듀프는 ‘월킨(Wirkin)’ 백의 등장과 함께 패션업계에서도 급부상했다. 월킨 백은 미국 최대 유통사 월마트에서 에르메스 버킨 백 스타일로 제작한 가방이다. 월마트 온라인에서 75달러(약 10만 원)에 판매되는 이 가방의 실제 이름은 ‘여성을 위한 가죽 가방(Genuine Leather Handbags Purse for Women)’이지만, 인스타그램, 틱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월킨 백으로 불리며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영국 유통업체 넥스트는 지난 10월 보테가 베네타 토트백과 비슷한 디자인의 ‘뉴트럴 라피아 위브 쇼퍼백(Neutral Raffia Weave Shopper Bag)’을 19파운드(약 3만 원)에 판매했다. 최근 한국의 랩 다이아몬드 주얼리 브랜드에서는 까르띠에 다무르 네크리스와 유사한 제품을 60만 원에 내놨다.
듀프에 저작권이나 상표권 문제가 정말 없을까. 법조계의 의견은 분분하지만, 대체로 법적 허용 범위 내에서 디자인을 참고하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특정 가방의 기본적인 형태나 기능적 요소는 저작권으로 보호받지 않는다. 디자인이 유사하더라도 로고나 독점적인 브랜드 정체성을 복제하지 않았다면 듀프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오리지널 브랜드가 문제를 삼는다면 법정에서 디자인의 독창성과 유사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질 여지가 있다.
듀프의 확산은 소비 시장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명품 가격은 최근 가파르게 상승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HBSC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명품 가격은 평균 50% 이상 올랐다. 지난해 명품업계를 뜨겁게 달군 ‘디올백 원가 8만 원’ 사태에서 보듯, 품질이 함께 올랐는지에 대해선 의문의 목소리가 높다. 시계 및 주얼리 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1월 리치몬트 그룹이 발표한 2024년 4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10% 증가한 62억 유로(약 9조 3500억 원)이지만, 가격 인상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했다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 컨설팅 그룹 매킨지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보고서를 발표했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 회사 베인 & 컴퍼니(Bain & Company)가 2024년에 실시한 소비자 설문 조사에 따르면, 만 18~34세 응답자의 62%가 제품을 선택할 때 가격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시계에선 일례로 스와치의 문스와치 열풍을 들 수 있다. 스와치와 오메가의 협업으로 탄생한 문스와치는 오메가 아이코닉 모델 스피드마스터 문워치 프로페셔널 디자인에 스와치의 재치 있는 콘셉트를 더했다. 2022년 3월 첫 출시된 문스와치는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스와치 매장 앞에 구매를 위한 밤샘 줄이 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첫해 문스와치는 100만 개 이상 팔렸다. 오메가 문워치에 비해 약 1/30에 불과한 가격, 생체 기반 플라스틱과 세라믹을 혼합한 친환경 소재 바이오세라믹(Bioceramic)을 사용한 점 등이 Z세대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Z세대의 특성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론진 CEO 마티어스 브레스찬과 세이코 워치 코퍼레이션 회장 아키오 나이토 등 브랜드 수장들은 손목 시계에 대한 Z세대의 허들이 낮다고 입을 모았다. Z세대는 애플 워치 등 손목에 착용하는 장비에 익숙해진 덕에 기계식 손목 시계에도 너그럽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고 시계 거래 플랫폼 크로노24의 젊은 이용자 수는 40% 이상 증가했고, Gen Z 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틱톡의 #wristwatch 관련 영상 조회 수는 10억 회를 돌파했다. 스위스 시계 산업 연맹(Fédération de l’industrie horlogère suisse, FHS) 자료에선 기계식 시계의 수출량이 전년 대비 5%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영국 뉴스 매체 가디언(Guardian)은 지난 1월 기사를 통해 디지털 디톡스도 기계식 시계에 대한 Z세대의 관심에 한몫했다고 주장했다. 2015년에 첫 출시된 애플 워치는 기계식 시계 시장을 위협하는 듯 보였지만 현재 판매가 감소하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 조사 및 분석 회사 IDC(International Data Corporation)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애플 워치 출하량이 18.9% 감소했다. 메타 CEO 마크 저커버그 등 테크 업계의 거물이 브레게, 까르띠에, 파텍 필립, 그뢰벨 포지 등 최고급 기계식 시계를 착용한 것도 Z세대의 관심을 얻고 있다. 롤렉스와 까르띠에 등 고급 시계 브랜드 명단을 보유한 국제적 리테일러인 워치스 오브 스위스 그룹(Watches of Switzerland Group)의 글로벌 구매 전무이사 에릭 마케어(Eric Macaire)는 “Z세대 고객이 스위스 시계, 브랜드 인지도, 지속 가능성을 찾는다”며 “시계 수집 여정을 시작한 젊은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 역시 시간이 지나도 가치를 유지하는 시계를 원한다. 고급 시계 브랜드가 나아갈 방향은 분명하다. 듀프 트렌드를 고급 시계의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재확인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럭셔리는 세대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라고 말한 티파니 워치 디렉터 니콜라스 보(Nicolas Beau)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게재호
97호(03/04월호)
Editor
유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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