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페 1839 CEO
아르노 니콜라스(Arnaud Nicolas)
| 하이엔드 기계식 클락 메이커 레페 1839가 한국에 오픈하다니 감회가 새롭다.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한 사람들과 적절한 시기에 올바른 접근 방식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정말 중요했다. 우리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부티크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첫 부티크를 준비하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기도 하다.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EAST는 그런 의미에서 적합한 장소였다. 공간 세팅도 마음에 든다.
| 항공우주 분야 엔지니어 출신이라 들었다. 언제부터 시계에 관심을 가졌나.
6살 때 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기계식 시계를 받았다. 하지만 그 시계를 찼던 건 하루 뿐이었다. 그 다음 날 시계가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궁금해서 다 분해해버렸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항상 기계 공학과 과학, 그리고 예술을 사랑해왔고, 그것들이 나를 자연스럽게 시계 제작으로 이끌었다. 진로를 변경한 시기는 우주 산업에서 과학 엔지니어로 일하던 45세 때다. 행복해지기 위해 변화가 필요했다. 나는 기술과 과학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예술도 사랑한다. 우주 산업에선 모든 것이 매우 정밀했지만, 정서적으로는 무미건조한 느낌이었다. 감성을 담은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갈망이 항상 있었다. 그래서 과학과 예술을 결합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았다. 시계 제작은 이러한 요소를 조화롭게 융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분야였다.
| 레페 1839와는 어떻게 첫 인연을 맺게 된건지.
사실 레페 1839는 2009년에 재정 문제를 겪었고, 나는 친구와 함께 브랜드를 인수하게 됐다. 그렇게 시계 업계에 발을 들였다. 그 당시 시계 업계는 다소 고루하게 느껴졌고, 난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예술 작품처럼 보이는 시계를 만들게 됐다.
| 레페 1839의 아트 피스는 당신이 인수한 뒤부터 시작됐다.
그렇다. 사실 레페 1839를 인수할 때부터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구상했다. 그 전부터 누구도 해보지 않은 특별한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그 아이디어를 신뢰하지 않았고, 그게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레페 1839를 인수하지 않았다면 그런 아이디어를 결코 실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어려움은 없었는지.
우리는 엔지니어링 사고방식, 부품 제조 및 조립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했다. 브랜드 철학과 기계식 시계 제작 방식에 대한 인식을 전면 수정했다. 단순히 기계 장치를 만드는 것에서,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과정으로 전환한 셈이다. 일반적으로 워치메이킹뿐 아니라 예술, 자동차, 컴퓨터, 스마트폰 등 모든 산업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먼저 아이디어가 나오면 엔지니어링 팀이 장치를 설계하고, 장치가 준비되면 디자인 팀이 그에 맞는 외관을 설계한다. 외관이 완성되면 마케팅 팀이 이야기를 덧붙여 판매 전략을 구상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와 정반대로 접근한다.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감성을 먼저 설정한 뒤, 그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계의 무브먼트와 외관을 함께 설계한다. 이러한 설계는 다른 제품에 쓰일 수 없는, 오직 그 디자인에 맞춘 특별한 무브먼트를 요구한다. 그리고 중간에 마케팅에 기대지도 않는다. 이야기에서 시작해 제품을 만드니, 그 제품 안에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담긴다. 그것이 레페 1839가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는가.
아마도 우리가 처음 만든 작품이 아닐까? 하지만 그 질문은 너무 어렵다. 마치 아버지에게 자식들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레페 1839의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는 약 2~3년이 걸린다. 나는 작품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면 출시하지 않는다.
| 그렇다면 가장 어려운 프로젝트가 있었는지.
타임 패스트 II가 가장 어려웠다. 워치메이킹과 오토마톤을 결합하고 싶었기 때문에 수많은 작은 디테일을 신경 써야 했다. 세부 사항이 매우 까다로웠다. 작품을 위해 극복하고 해결해야 할 많은 요소가 있었다.
|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인가.
우선 레페 1839의 아이코닉한 이스케이프먼트를 자동차 드라이버처럼 배치했다.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스티어링 휠은 시간을 설정하는 크라운의 역할도 겸한다. 태엽은 어린 시절 흔히 갖고 놀던 풀백(pull-back) 장난감 자동차처럼 감을 수 있다. 정교한 대시보드는 클래식 스타일이다. 실제 자동차처럼 키를 돌리면 엔진이 시작된다. 시동이 걸리듯 엔진이 켜지는 느낌을 구현했다. 피스톤이 위아래로 움직이고 팬이 회전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기어 박스 레버도 자동차의 기어 위치를 표현했다. 이렇게 작은 디테일들을 다양하게 담아내려 노력했다.
|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진정한 도전은 단순히 아름다운 작품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마음의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마음의 작품’은 단순히 멋지게 만든 물건이 아니라, 뭔가를 표현해야 한다. 내게 있어 ‘마음의 작품’이란 예술의 본질적인 목적과도 같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감동을 주거나 놀라게 하면서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타임 패스트 모델은 자동차와 워치메이킹의 공통점을, 그레네이드(수류탄) 모델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나타내고 싶었다. 레페 1839의 작품들은 모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며,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 어디서 영감을 얻는가.
모든 것에서. 사실 영감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본다’기보다는, 항상 마음을 열어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인슈타인의 ‘창의성은 뇌가 즐거워할 때 온다’는 말을 좋아한다. 내게 창의성은 마음을 항상 자유롭게 열어두고 끊임없이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하는 상태에서 생겨난다. 편안하게 쉬고 있을 때, 그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오히려 뇌가 활성화돼 창의력이 발현될 수 있다.
레페 1839와 MB&F의 협업작 스타플릿 머신.
| MB&F와의 협업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2014년 스타플릿 머신을 시작으로 협업을 진행해왔다. 첫 만남은 두 친구가 걷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 스타플릿 머신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둘 다 어릴 때 <스타트렉> TV 시리즈를 좋아했고, 내가 추구하고자 했던 의도와도 잘 맞았기 때문이다. 스타플릿 머신은 첫 번째 SF 영화 시리즈이자, MB&F와의 첫 작품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 MB&F는 샤넬에 인수됐다. 협업에 영향이 있지는 않는가.
MB&F와 샤넬, 그리고 레페 1839와 LVMH의 관계는 우리 협업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막스(MB&F CEO 막시밀리안 뷔셰)와 나는 회사에서 권한이 충분하며, 그룹의 의무를 따를 필요가 없다. 우리의 협업은 그 의미와 즐거움이 이어지는 한 계속될 것이다.
| 손목 시계보다 탁상 시계를 더 선호하는 이유는.
각자의 철학이 다르다. 손목 시계는 2차원 객체에 가깝다. 나는 더 넓은 공간에서 표현하고 싶다.
| 작년 LVMH 그룹의 일원이 됐다. 어떤 이점을 있는지.
LVMH 그룹에 합류하면서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이전엔 친구와 함께 둘이서 회사를 운영하며 최대한 많이 성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금도 스스로 마련해야 했고. 하지만 이제는 창업 정신을 발휘해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혁신을 추구할 수 있게 됐다. 제품을 통해 새로운 것을 표현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처음에는 친구와 함께 1단계를 밟아왔다면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혼자선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겠지만 LVMH 지원 덕분에 훨씬 더 빠르게 목표를 이룰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LVMH 브랜드와의 협업에서 재미있었던 부분은 무엇인가.
티파니 또는 루이 비통과의 작업은 정말 즐거웠다. 나는 창의적인 작업을 선호하는데, 협업 작품들이 아주 창의적이라서 재미있었다. 협업을 정말 좋아한다. 함께 하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레페 1839와 티파니의 협업작.
레페 1839와 루이 비통의 합작 몽골피에르 아에로.
| 한국 시계 시장에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한국은 완전히 다른 시장이다. 한국 시계 시장은 매우 성숙했으며, 명품 소비는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한국 시장에 진입하고자 했다. 적절한 파트너와 적합한 장소를 기다려왔다.
| 그럼 레페 1839가 가장 인기 많은 시장은 어디인가.
미국, 러시아, 유럽에서 우리의 입지는 강력하다. 지금은 아시아, 북미, 유럽, 중동 시장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정 지역에 너무 치우치거나 다른 시장에서 약해지면 브랜드에 위험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한국 소비자들이 레페 1839의 어떤 면에 매력을 느끼기를 바라는가.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웃음) 시간이 걸릴 걸 알고 있기 때문이. 다만 사람들이 진심으로 공감하고 긍정적으로 봐주길 바란다. 제일 원치 않은 반응은 “괜찮네, 나쁘지 않아” 같은 말이다. 그냥 “좋네” 하고 지나가는 게 가장 아쉽다. 차라리 “별로야”라고 말하는 게 더 낫다. 적어도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다는 뜻이니까. “괜찮다”는 반응은 감동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다. 어떤 종류든 강렬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게 우리가 추구하는 바다.
수류탄에서 착안된 그레네이드.
| 위와 관련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한 비평가가 그레네이드(수류탄) 작품을 보고 “전쟁을 미화하려는 것이냐”며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 그리네이드의 핵심을 설명해줬다. 그레네이드는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표현하는 작품이다. 일종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생은 짧고 덧없기 때문에 현재를 즐기라는 의미다. 그는 이런 의도를 알게 되자 그레네이드를 구입하기까지 했다. 내가 좋아하는 예술 작품의 요소는 바로 이런 점이다. 처음에는 싫어할 수 있지만 메시지를 이해하면 가지고 싶어지는 것.
| 레페 1839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깃든 메시지는.
레페 1839의 모든 작품은 영감, 감정, 그리고 충격을 불러일으킨다. 그 세 가지가 있어야 진정한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