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 메티에 다르 아틀리에(MMA) 외부 전경. 17세기 베른 스타일
농가로 복원됐다.
까르띠에 메티에 다르 아틀리에(Cartier Maison Métier d’Art Atelier, 이하 MMA)는 까르띠에 시계 전반을 책임지는 라쇼드퐁 매뉴팩처 바로 옆에 위치한다. 메티에 다르는 시계 제작에 쓰이는 수공 예술 기법을 뜻한다. 에나멜링, 인그레이빙, 젬 세팅, 모자이크, 미니어처 페인팅 등을 일컫는다. 안타깝게도 손에서 손으로 전수되는 이런 기술들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까르띠에는 이 귀중한 기술들을 보존하고 혁신하기 위해 2014년 MMA를 설립했다. 까르띠에에게 메티에 다르 아틀리에는 메종의 뛰어난 공예 노하우를 대표할 공간이자 전통 안에서 혁신이 탄생하는 산실이어야 했다. 까르띠에는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 대신 목가적 농가를 택했다. 라쇼드퐁 매뉴팩처 지근의 한 농가를 인수하고, A&A 아틀리에 드아키텍처(A&A Atelier d’Architecture) 소속 건축가 스테판 오니(Stéphane Horni)와 전통 가옥 복원 전문가 질 티소(Gilles Tissot)에게 복원 작업을 의뢰했다. 그들은 라쇼드퐁과 뇌샤텔, 그리고 베른 주의 여러 농가에서 공수한 목재 패널, 석재 바닥, 문, 벽난로 같은 재료로 건물 인테리어를 재구성하는 동시에, 현대적인 건축과 그 기능을 구현했다. 겉에서 보면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는 17세기 베른 스타일 농가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1500㎡(약 454평) 규모의 하우스 워크숍 중앙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유리 샤프트에 압도된다. 전통적으로 스위스 장인들은 자연광 아래서 최적의 작업물을 이끌어내곤 했다. 대부분의 매뉴팩처가 창을 최대한 많이 내고, 통유리로 마감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유리로 이뤄진 중앙 샤프트는 MMA 장인들에게 충분한 일조량을 보장한다. MMA 건물은 2022년 LEED(Leadership in Energy and Environmental Design)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미국 그린 빌딩 협회(USGBC)가 개발한 LEED는 에너지 효율성, 물 절약, 자재 사용, 실내 환경, 친환경 디자인 등 건축물의 친환경 성능을 평가하는 인증이며 플래티넘은 그중 가장 높은 등급이다.
까르띠에에 의하면 MMA는 지식, 공예, 재능, 노하우가 공존하는 생태계다. 팀은 공예 부문, 젬 세팅 부문, 워치 메이킹 부문으로 구성되며, 약 50명의 직원이 서로 긴밀하게 협업한다. 정량적 성과로 30개 이상의 특허를 획득했다. 정성적 성과는 가치를 숫자로 따질 수 없는 주얼리 워치 및 파인 워치 메이킹 컬렉션의 예술 작품들이다. 까르띠에 매뉴팩처 디렉터 카림 드리치(Karim Drici)는 “MMA의 정신은 그 어느 곳보다 독특하다”며 “전통과 현재의 대화를 통해 공예 기술이 오랜 시간을 견뎌내고 그 어느 때보다 생명력을 지니게 될 것”이라 강조했다.
MMA 내부는 전통 가옥과 현대 건축의 장점만이 결합됐
목재 패널, 석재 바닥, 문, 벽난로 등은 베른 주 여러 농가에서 공수했다.
MMA 이노베이션의 비밀
첫 번째 코스는 2층의 한 구석에서 시작됐다. 벽과 선반엔 다채로운 컬러 팔레트, 각종 크기의 붓, 나비 표본, 다양한 자개 샘플, 말린 꽃잎, 말라카이트나 타이거아이(호안석) 같은 컬러 스톤 등이 놓여 있었다. 기상 조건에 따라 결정체의 모양이나 분포가 변하는 스톰 글래스(storm glass),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응용한 리퀴드 모션 타이머, 심지어 오리지널 파나마 햇과 일본의 오리가미 도감도 있었다. 수집가의 방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까르띠에 관계자는 MMA 장인들이 영감을 얻는 공간이라 설명했다. 다이얼, 케이스 디자인은 물론 스트랩의 형태나 소재까지, 이곳에선 무궁무진한 조합과 응용이 가능했다. 레벨라씨옹 뒨 팬더워치가 여기서 탄생했다. 2018년 SIHH에서 센세이션을일으킨 시계다. 다이얼을 세우면 작은 골드 비즈들이 팬더의 얼굴 모양으로 천천히 흘러내린다. 이노베이션 파트를 보니 물과 기름의 상이한 성질을 시계에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이해가 갔다. 꾸쌍 드 까르띠에 하이 주얼리 워치의 신축성 있는 케이스를 실현한 격자 무늬 골드 링크, 골드 소재를 직물처럼 짜서 장갑 디자인으로 완성한 베누아 워치 같은 흥미로운 샘플도 함께 구경할 수 있었다.
꾸쌍 드 까르띠에 하이 주얼리 워치 메이킹.
꾸쌍 드 까르띠에 하이 주얼리 워치.
레벨라시옹 뒨 팬더 워치.
불의 예술, 금속의 예술, 구성의 예술
이노베이션 파트를 지나면 수공예 장인들의 영역이 펼쳐진다. MMA 수공예 부문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에나멜링을 의미하는 불의 예술, 골드 비즈와 와이어 공예를 뜻하는 금속의 예술, 그리고 다양한 재료를 조합하는 구성의 예술이다.
불의 예술 에나멜링엔 페인티드(Painted), 클루아조네(Cloisonné), 샹르베(Champlevé), 그리자유(Grisaille), 그리자유 골드 페이스트(Grisaille Gold Paste), 플리크아주르(Plique-à-jour) 에나멜이 포함된다. MMA에선 각 에나멜링의 단계별 샘플을 통해 그 과정을 생생하게 유추할 수 있었다. 페인티드 에나멜링은 금속 표면에 에나멜을 붓에 묻혀 직접 그림이나 장식을 그려넣는 방식이다. 유화처럼 대채로운 색상과 디테일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클루아조네는 쉽게 말해 양각 기법이다. 금속 표면에 얇은 금속 와이어로 구획을 만들고 그 안에 다양한 색상의 유약(에나멜)을 채워 구워낸다. 샹르베는 클루아조네와 반대로 음각 기법이다. 금속 표면을 파내고 에나멜을 채워 넣는다. 그리자유는 백색 유약으로 음영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백색 유약은 리모쥬 도자기를 만들 때 쓰이는 ‘블랑 드 리모주(Blanc de Limoges)’로 알려졌다. 그리자이유 골드 페이스트는 그리자유 에나멜 기법에 고운 금가루를 더해 고급스러움과 화려함을 더한다. 결과물이 정교하고 아름다운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주로 한정판 시계나 예술 작품에 사용된다. 플리크아주르는 프랑스어로 빛이 통과하는 창을 뜻한다. 금속 틀 안에 투명한 에나멜을 채우는 매우 정교한 투명 에나멜링 기법이라서다. 완성된 작품은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보인다. 메티에 다르 분야에서 잘 알려진 전통적인 에나멜 기법들이다. 까르띠에서는 이 기법을 새롭게 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크래쉬 티그레 워치엔 이름처럼 호랑이 무늬가 베젤과 다이얼에 걸쳐 있는데, 각 줄무늬에 적용된 에나멜링은 샹르베 기법이다. 네이비 블루에서 터콰이즈를 지나 투명한 그린 컬러에 이르는 그러데이션을 나타내고 있다. 샹르베로 이런 그러데이션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700℃에서 750℃ 사이 가마에서 16번 이상 구워내야 한다. 온도를 세심하게 여러 단계로 조절해야 짙은 네이비에서 투명한 그린까지 컬러를 순서대로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에나멜링은 가마에 여러 번 구워내야 하는 특성상 한번에 원하는 컬러를 얻어낼 가능성이 크지 않으며, 기포나 얼룩이 생기면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한다. 크래쉬 티그레 워치엔 언뜻 봐도 그러데이션 줄무늬가 4개는 넘었다. 얼마나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클루아조네 에나멜링을 위해 금속 면을 세우는 작업.
에나멜링 작업.
샹르베 에나멜링으로 그러데이션 컬러를 표현한 크래쉬 티그레 워치.
다음은 그래뉼레이션(Granulation)과 필리그리(Filigree) 기법으로 대표되는 금속의 예술 차례였다. 그래뉼레이션은 작고 미세한 금속 알갱이(granule, 그래뉼)를 금속 표면에 배열하고 용접해 독특한 질감과 장식을 만들어내는 공예다. 금속 알갱이가 금속 표면에 정교하되 자연스럽게 융화되기 위해선 2000번에서 3000번 정도 용접 불꽃을 통과해야 한다. MMA 그래뉼레이션 장인은 현미경으로 확대한 화면을 계속 확인하며 용접 작업을 진행했다. 한 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까르띠에는 그래뉼레이션 기법을 에나멜링과 결합한 에나멜 그래뉼레이션까지 섭렵했다. 2016년 고급시계박람회 SIHH에서 선보인 까르띠에 다르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워치는 등장과 함께 까르띠에를 에나멜 그래뉼레이션의 아이콘으로 세웠다. 까르띠에가 에나멜 그래뉼레이션을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브랜드는 아니지만, 이토록 독창적으로 활용하는 곳은 드물다. 필리그리는 골드나 실버 등 가늘고 얇은 금속 와이어를 꼬거나 얽어 복잡한 패턴을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까르띠에는 2015년 필리그리 기법을 새롭게 부활시키며 주목 받았다. 이를 실현한 곳 역시 MMA였다. MMA는 롱드 루이 까르띠에 XL 워치에서 블랙 래커 다이얼을 배경으로 까르띠에 아이코닉 모티프인 팬더를 레이스처럼 정교한 필리그리로 표현해냈다. MMA에서 이 필리그리를 완성하는 데에만 꼬박 10일이 걸렸다고 한다.
그래뉼레이션을 위한 비즈 작업.
에나멜 그래뉼레이션을 적용한 까르띠에 다르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워치.
롱드 루이 까르띠에 XL 워치와 필리그리 다이얼.
구성의 예술은 마케트리(Marquetry)를 뜻한다. 마케트리란 나무, 짚, 잎사귀, 꽃잎, 자개, 상아, 금속, 돌 등 다양한 색상과 질감을 지닌 재료를 정밀하게 조각하고 조합하는 쪽매붙임 기법을 뜻한다. 작은 면적 위에 얇게 자른 조각들이 정확하게 맞물리도록 설계한다. 모티프에 따라 조각들이 최대 400개까지 이르기도 한다. 불규칙한 작은 조각들(tesserae)을 조립해 이미지를 형성하는 모자이크와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 까르띠에는 마케트리를 다양하게 시계에 적용한다. 롱드 루이 까르띠에 에클라 드 팬더 워치에선 짚, 나무 같은 자연 재료와 사파이어 등 보석이 포함된 124개 조각을 조합했다. 추상적이면서 기하학적인 팬더 모티프에선 끌어당기는 듯한 에너지마저 느껴진다. 투어 때 만난 MMA 마케트리 장인은 자개와 오닉스 등 2090개 조각을 베누아 워치 다이얼에 조립하고 있었다. 여전히 전통적인 커팅 장비가 쓰인다는 점도 놀라웠다. MMA 투어를 맡은 까르띠에 관계자는 모든 수공예 기술은 전통에 기반하며, 현대 기술로 보완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롱드 루이 까르띠에 에클라 드 펜더 워치의 마케트리 다이얼.
주얼리와 파인 워치 메이킹
MMA에선 주얼리와 워치 메이킹 두 분야가 긴밀하게 공존한다. 두 분야가 같은 층에 위치하는 이유다. MMA 주얼러는 조각가이자 건축가며, 전체 제작 과정에서 일종의 조정자 역할을 맡고 있다. 정밀한 워치 메이킹을 위한 세팅과 폴리싱 역시 그들의 손에서 이뤄진다. 2015년 SIHH에서 처음 공개돼 세간을 놀라게 했던 바이브레이팅 다이아몬드 세팅(Vibrating Diamond Setting)도 MMA의 업적이다. 바이브레이팅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가 움직임에 따라 개별적으로 미세하게 진동하는 까르띠에의 독자적 세팅법이다. 이번 투어에선 모형을 통해 바이브레이팅 다이아몬드 세팅 구조를 살펴볼 수 있었다.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기둥 모양 부품을 모래시계처럼 허리가 잘록한 접점에 고정하는 조인트 방식인데, 한번 끼우면 위⋅아래와 사방으로 유연하게 움직이지만 빠지지는 않는 구조다.
주얼리 파트는 그레인 세팅(Grain Setting), 인버티드 파빌리온 세팅(Inverted Pavilion Setting), 까르띠에 고유의 퍼 세팅(Fur Setting) 등 까르띠에 파리 워크숍과 동일한 세팅 방식을 공유한다. 퍼 세팅은 까르띠에가 동물의 모피나 깃털 같은 자연적인 질감을 재현하기 위해 개발한 기법이다. 전체적인 모습이 부드러운 모피(퍼)처럼 보여 팬더 모티프에 많이 쓰인다. 퍼 세팅 덕분에 팬더 주얼리 워치의 극사실적 다이아몬드 파베 팬더가 나올 수 있었다.
퍼 세팅이 적용된 팬더 하이 주얼리 워치.
파인 워치 메이킹 파트는 파인 워치에 해당되는 무브먼트의 조립과 점검을 진행한다. 까르띠에 파인 워치를 대표하는 스켈레톤(skeleton) 기법과 미스테리어스(Mystérieuse) 관련 무브먼트가 전부 여기서 완성된다. 스켈레톤(skeleton) 기법이란, 뼈대를 뜻하는 이름처럼 기어 트레인, 이스케이프먼트, 배럴 등 무브먼트의 주요 구성 요소를 제외한 부분을 덜어내는 것이다. 기계식 시계의 아름다움과 정밀 기술력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까르띠에 스켈레톤은 예술적인 디자인과 결합해 무브먼트 자체가 다이얼의 중요한 미적 요소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무브먼트 브리지를 로마 숫자 인덱스로 활용한 산토스 드 까르띠에 스켈레톤 워치, 마이크로 로터를 스켈레톤 방식과 결합한 산토스 뒤몽 마이크로 로터 스켈레톤 워치가 대표적이다. 미스테리우스 메커니즘은 시계나 무브먼트에서 보이는 부분이 없이 시간이 가는 것처럼 보이는 장치다. 기어나 무브먼트, 또는 핸즈만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여 궁금증과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킨다. 1912년 까르띠에 시계 장인 모리스 쿠에(Maurice Couet)가 19세기 후반에 발명된 미스터리 벽시계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했다. 초기엔 주로 까르띠에 탁상 시계에 사용됐지만 시간이 지나며 까르띠에 손목 시계와 주얼리 워치로 확장됐다. MMA에선 2017년 등장한 로통드 드 까르띠에 미니트 리피터 미스테리우스 더블 투르비용(Rotonde de Cartier Minute Repeater Mystérieuse Double Tourbillon) 워치, 2022년의 하이라이트 마스 미스테리우스(Masse Mystérieuse) 워치를 통해 그 비밀을 엿볼 수 있었다. 마스 미스테리우스 워치는 전체 무브먼트를 와인딩 로터에 통합시킨 최초의 시계다. 로터가 회전하며 동력을 무브먼트에 전달하는 셀프와인딩 방식이지만 다이얼은 투명하게 처리됐다. 핸즈와 로터 통합 무브먼트가 어떻게 다이얼에 떠 있는지 즉각적으로 알기 어렵다. MMA 관계자는 7개의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 디스크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디스크 가장자리는 베젤에 가려져 감쪽 같다. 지금도 마스 미스테리우스는 까르띠에 미스테리우스 메커니즘의 마스터피스로 인정 받고 있다.
로터와 무브먼트를 통합한 마스 미스터리어스 워치.
바이브레이팅 다이아몬드 세팅을 진행하는 모습.
게재호
95호(11/12월호)
Editor
유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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