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계 애호가는 언젠가 자성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시계가 자성을 띠는 이유는 무엇이고 어떻게 제거해야 할까.
자석을 둘러싼 자기장의 모습
시계와 자성
전하(電荷)란 물질이 가지고 있는 전기의 양을 뜻한다. 전하가 이동하면 전류가 생성되고, 전류는 자기장을 형성해 다른 자성 물질에 힘을 가한다.
자기장은 물체 사이에서 끌림 또는 밀림과 같은 상호작용을 유발하는데, 이를 자기(磁氣)라고 한다. 그림 1은 자석과 이를 둘러싼 자기장을 보여준다. 강한 자성을 띠는 강자성체로는 철, 니켈, 코발트, 강철이 포함된 합금 등이 있다. 반면 알루미늄과 플래티넘은 상자성체로 분류된다. 외부 자기장에 의해 약한 자성을 띠고, 자기장이 제거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물질이다.
플라스틱, 나무, 유리 등은 반자성체다. 대다수의 물질과 마찬가지로 외부 자기장에 약하게 밀려난다.
모든 자성 물질의 공통점은 내부에 소자석(Elementarmagnet)이 있다는 것이다. 소자석은 원자 단위로 존재한다. 원자의 전자들은 궤도를 돌며 자기장을 형성하는데, 이 작은 자기장이 바로 소자석의 근원이다. 강자성체의 경우 소자석을 많이 갖고 있어 더 쉽게 자성을 띤다.
작은 나침판 바늘을 떠올려보자. 바늘에 자석을 여러 번 문지른 후 실에 매달면, 바늘이 지구 자기장에 따라 나침판처럼 움직인다.
(왼쪽) 소자석의 자성이 없는 상태 / (오른쪽) 자성을 띠는 소자석은 일렬로 배치돼 있다.
위 그림은 강자성체 내부에 존재하는 소자석을 보여준다. 소자석은 자유롭게 회전할 수 있으며 모든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왼쪽 그림에서 소자석은 무질서하게 배열돼 다양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겉으로 보면 자성을 띠지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나 물질을 자기장 위에 올려놓으면 자성을 띠게 된다. 자기장이 강해질수록 소자석은 한 방향으로 더 많이 정렬된다. 자성을 제거하기도 더 어려워진다.
시계가 자화되면 발생하는 문제
그렇다면 시계가 자성을 띠는 상태인 자화(磁化)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기계식 시계가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서는 외부 영향을 받지 않고 균일하게 진동해야 한다.
자성은 밸런스 휠의 진동에도, 기어트레인의 내부 마찰 상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전에는 밸런스 스프링을 강철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자기장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코일이 강하게 자화돼 서로 달라붙을 위험도 있다.
스프링의 유효 길이가 인위적으로 짧아지면 진동 속도가 빨라진다. 스프링이 심하게 틀어져 다른 부품에 닿아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밸런스 휠의 진동이 느려진다.
두 경우 모두 결국 시계가 빨리 가거나, 늦게 가는 결과를 초래한다.
현대 시계는 대부분 항자성 소재로 만들어져 자성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맞는 말이다.
최근에는 철과 니켈, 크롬의 합금인 니바록스(Nivarox) 나 실리콘으로 밸런스 스프링을 만드는 추세다.
밸런스 휠은 베릴륨, 구리, 철로 이뤄진 합금 글루시듀어(Glucydur) 로 만들어진다. 플레이트와 브리지 등 프레임도 비자성 소재인 황동을 주로 사용한다.
다만, 아쉽게도 자성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니바록스 스프링과 글루시듀어 밸런스 휠에는 여전히 소량의 철이 포함돼 있다. 소자석이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물론 옛 시계에 비해 자성의 영향을 훨씬 적게 받기는 하지만, 그만큼 환경이 달라졌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전류가 흐르는 모든 도체는 자기장을 형성한다. 즉, 모든 전자 기기가 강약이 다른 자기장을 만들어내며 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다가 기어 트레인과 나사, 샤프트는 여전히 경화된 강철로 만드는 추세다.
이런 부품이 자화될 경우 기어 트레인의 작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부품 간 자기적 상호작용으로 인해 기어의 움직임은 갑자기 느려지거나 빨라지고, 이는 곧 이스케이프먼트를 통해 밸런스 휠로 전달된다.
시계의 자성 제거
그렇다면 자성의 영향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손목을 최대한 전자 기기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아야 할까?
사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자성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는 전자 기기와 자기장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수리점을 찾아온 시계의 약 80%는 눈에 띄게 자화돼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먼저 시계를 타임그래퍼(timegrapher) 위에 올려놓고 시간을 측정한 후, 자성을 제거하고 다시 정밀도를 확인하는 편이다. 대부분 명확한 개선이 나타난다.
시계의 자성을 제거하려면 위 그림에 나타난 것처럼 배열을 다시 무질서하게 만들어야 한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충격을 가하는 것, 두 번째는 자기장을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물론 충격은 기계식 시계에 손상을 줄 수 있으므로 대개 자기장을 이용한다.
이때 통제된 방식으로 자기장을 적용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자화가 더 강해질 수 있다.
사진처럼 자성을 제거하는 데 특화된 기기를 사용한다.
동아시아에서 제작한 자성 제거 기기
위쪽에 놓인 푸른색 기기는 동아시아에서 제작된 자성 제거 기기다. 기기는 코일과 붉은색 버튼으로 구성돼 있다. 버튼을 누르면 전기 회로가 닫히고, 코일에 전류가 공급된다. 교류(AC) 전류 특성상 자기장은 초당 50번 방향을 바꾼다. 기기를 사용해 시계의 자성을 제거하려면, 시계를 기기 위에 올려놓고 버튼을 누른 상태에서 시계를 멀리 이동시키면 된다. 이 과정에서 약해지는 자기장이 금속 내부의 소자석을 무질서하게 만들며 자성을 제거한다. 그러나 만약 이 기기를 소유한 분이 있다면, 사용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기기를 직접 분해해 분석해본 결과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근에 출시된 시계를 다루기에도 출력이 부족하다. 오늘날 시계 부품은 자화되기 더 어려워졌지만, 그만큼 자성을 제거하는 것도 더 어렵다.
자성 제거 기기 ‘안티마그2’
대신 새로운 자성 제거 기기인 ‘안티마그2(Antimag2)’ 를 소개한다. 시계 수리 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기이기도 하다. 시계를 기기 위에 올려놓고 검은색 버튼을 누르면 순식간에 자성이 제거된다. 자기장을 제어해 소자석 배열을 무질서하게 만드는 원리다. 파란색 기기와 동일한 작업을 수행하면서도 사용 방법이 훨씬 간단하다. 안티마그2는 간단한 자성 제거 기기보다 약 15배 비싸지만, 신뢰할 수 있는 자성 제거와 안전한 사용을 보장한다.
워치메이커이자 시계 수리 서비스 ChronoRestore.com의 창립자 레온 장.
게재호
97호(03/04월호)
글
레온 장
Editor
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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