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가격은 오늘도 오른다

가격인상이 실적 반등으로 이어질까. 의견이 나뉜다.

내용

명품은 오늘이 가장 저렴하다는 말이 있다.


 

시계도 예외는 아니다. 럭셔리 시계 업계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매년 한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해왔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랐다. 롤렉스가 지난 1월제품 가격을 8% 인상한 데 이어 6월에도 5% 추가 인상을 단행했다.업계에서는 한해에 수차례 가격을 올리는 ‘N차인상’이 도미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까르띠에, 바쉐론 콘스탄틴, IWC 등이 속한 리치몬트 그룹은 글로벌 정책에 따라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롤렉스뿐 아니라 리치몬트 그룹이 소유한 대부분의 브랜드가 가격을 올렸다. 튜더는 연초 블랙 베이 등 인기 모델 가격을 약 2%, 까르띠에는 5월 일부 시계 및 주얼리 가격을 약 5% 인상했다. 예거 르쿨트르와 IWC도 7월 일부 제품에 한해 가격을 소폭 상향 조정했다. 


시계 및 주얼리의 명가 스와치그룹과 LVMH도 가격을 인상하는 추세다. 스와치그룹의 하이엔드 브랜드 브레게와 블랑팡은 3월 전제품 가격을 10 ~15%인상했고, 오메가는 7월 가격을 3% 가량 올렸다. LVMH 소속 불가리도 4월 전체 주얼리 가격을 약 7% 올렸다. 업계에서는 태그호이어 등 LVMH 시계 브랜드가 아직 가격을 올리지 않았고 롤렉스가 2차 인상을 단행한 만큼, 하반기에도 추가 인상이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시계 산업 실적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며 “실적 만회를 위해 하반기 추가적으로 가격을 인상할 수있다”고 예상했다.


글로벌 시계 산업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보복소비 덕분이다.


악화되는 실적

글로벌 시계 산업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보복소비 덕분이다. 스위스 시계 산업 연합(FH)에 따르면 2021년 스위스 시계 수출은 2020년 대비 31.2%나 성장했다. 성장세는 꾸준히 이어져 이 기간 리치몬트 그룹과 스와치그룹, LVMH 모두 기록적인 매출을 달성했다. 모건 스탠리에 따르면 롤렉스는 지난해 매출 100억 스위스프랑(약 15조 7000억원)의 장벽을 깬것으로 추정된다. 실적 악화 조짐은 올해 초부터 시작됐다. 아시아, 특히 중국과 홍콩에서 시계 분야에 대한 수요가 둔화되며 수출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FH는 올해 상반기 수출은 23억 스위스프랑(약 3조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2% 감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중국에서의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8.2%홍콩에서는 19.2% 감소했다.엔저 현상으로 일본으로 시계 쇼핑을 떠나는 관광객이 증가하며 일본에서의 수출은 늘었지만, 전체적인 감소세를 상쇄하지는 못했다. 이는 곧 시계 브랜드의 상반기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스와치그룹이다. 스와치그룹은 올해 상반기 매출 34억 5000만 스위스프랑(약 5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3%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2억 400만 스위스프랑(약 3206억원)으로 무려 70.5%나 급감했다. 스와치그룹은 중국에서의 수요 감소를 주원인으로 꼽았다. 스와치그룹은 올 상반기 중국에서만 매출이 30% 하락했다. 닉하이에크(Nick Hayek) 스와치그룹 CEO는 “중국 소비자들이 가격에 더 민감해졌다”고 설명했다. 


LVMH의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 줄어든 417억 유로(약 62조3400억원)로 나타났다.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 증가한 209억 유로(약 31조원)였다. 매출이 큰 폭으로 하락하지는 않았지만 시장 전망치인 매출 3% 증가를 하회한 수준이다. 상반기 영업이익도 107억 유로(약 15조8000억원)로 시장 전망치를 밑돌았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경제 및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리치몬트 그룹 시계 제조 부문의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 감소했다. 리치몬트 그룹 또한 중국 매출이 27% 감소한 게 전체 실적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중국 그리고 2차 시장

시계 산업은 중국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베인앤컴퍼니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급격한 경제 성장과 함께 명품 소비량도 큰 폭으로 증가해왔다. 2014년 명품 소비량은 2008년의 두 배 가까이 됐을 정도다. 지난해 중국은 전세계 럭셔리 소비의 16%를 차지하기도 했다. 다만 최근 경제 성장이 둔화하며 럭셔리 분야 소비 자체가 줄어드는 추세다. 올해 상반기 중국 내 명품 반품률은 약 50%로 럭셔리 업계 평균인 30%를 크게 웃돌았다.


럭셔리 분야에서 시계의 가치가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모건 스탠리는 7월 럭셔리 시계의 2차 시장 가격이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2차 시장에서 시계가 활발히 거래된다는 것은 소비자들의 관심도 그만큼 높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럭셔리의 경우 2차 시장 가격이 1차 시장이 얼마나 활성돼 있는지를 측정하는 척도로도 쓰인다. 올해 2분기 럭셔리 워치의 2차 시장 가격은 전분기 대비 2.1% 하락한 수준이었다.


대표적인 ‘리셀’ 아이템으로 꼽혔던 롤렉스 시계에 대한 시장 열기도 줄고 있었다. 롤렉스 서브마리너의 글로벌 대기 시간은 2023년 105일에서 올해 상반기 68일로 줄었고, GMT-마스터Ⅱ의 대기 시간도 2022년 180일에서 올해 상반기 90일로 절반이나 줄었다. 모건 스탠리 관계자는 “업계 전반의 관심을 끌어들였던 롤렉스에 대한 열풍이 줄어들고 있다”며 “명품 시계가 한때 열망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시계 자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가격 인상, 정말 답일까

시계 가격 인상이 브랜드의 실적 회복에 정말 도움이 될까. 업계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베블런 효과’에 따라 럭셔리에 대한 관심이 다시 집중될 거라는 의견이 있는 한편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베블런 효과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무리해 높은 가격의 소비재를 구매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N차인상’을 단행해도 명품을 구입하기 위해 오픈런하는 게 대표적인 베블런 효과다. 업계 한관계자는 “하이엔드 브랜드의 경우 고객들의 로열티가 높은 편”이라며 “견고한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에 큰 타격을 입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제는 ‘비쌀수록 잘팔린다’는 공식에 금이 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오히려 가격을 무리하게 올리면 럭셔리 소비에 눈독을 들였던 중산층 소비자마저 떠나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미국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연소득 12만5000달러(약 1억6000만원) 이하 중산층은 물가가 올라가자 사치품을 가장 먼저 줄였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방의 경우에는 상류층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수요가 받치고 있다면 시계는 상대적으로 눈에 잘띄지 않다 보니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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