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
서울에서 피부과를 운영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시계는 오데마 피게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시계의 진정한 매력은 글라스백에서 보이는 로터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만족스러운 시계를 골라달라 말하니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와 로열 오크를 꺼내들었다.
첫 시계가 궁금하다.
고등학생 때 부모님께서 스와치 시계를 선물로 주셨다. 그때는 시계에 큰 관심이 없어 시계를 기념품이나 장난감 정도로 여겼다. ‘시계는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한 것 같다. 대학교에 들어가 돈을 모아 처음으로 기계식 시계를 샀다. 세이코에서 나온 스포츠 워치였다. 크로노그래프와 브레이슬릿이 눈에 띄는 크고 투박한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내 예산 범위 내에서 살 수 있는 시계 중 가장 그럴싸해 보였다. 세이코보다 비싼 브랜드는 애초에 살 수 없었고,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세이코의 기술력이 좋다는 것도 한몫했다.
대학생 때 기계식 시계에 관심이 생긴 건가.
처음에는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액세서리를 하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팔찌를 사고 싶지는 않았다. 자연스레 시계에 시선을 돌리게 됐다. 다양한 시계를 계속 보다 보니 내 취향이 조금씩 드러나더라. 드레스 워치보다는 브레이슬릿을 갖춘 스포츠 워치가 마음에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부끄럽지만, 대학생 때는 기계식 시계에 대한 이해가 없어 내부에 배터리가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시계를 자주 차고 다니지 않았고, 와인딩도 잘하지 않아 멈추는 일이 많았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오랜 기간 시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결혼할 때 예물로 시계를 산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관심을 둔 건 4년 정도 됐다. 가장 먼저 오데마 피게 코드 11.59를 구입했고, 그다음으로 로열 오크를 샀다.
처음부터 럭셔리 시계에 입문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재밌는 일이 있었다. 평소에는 무척 편하게 입고 돌아다닌다. 남들 눈엔 후줄근해 보일 수 있을 정도로. (웃음) 언젠가 잠옷 같은 옷을 입고 한 고급 시계 부티크에 들러 시계를 보여달라 했더니 직원이 상대도 안 해주더라. ‘당신 같은 사람이 왜 시계를 보여달라 하냐’며 무시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민망했다. 이후 복장에 신경 쓴 뒤 방문했더니 시계를 볼 수 있었다.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을 것 같다.
오데마 피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
처음에는 그저 한번 사보고 싶었다. 로열 오크가 구하기 어렵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오데마 피게 부티크에 들어가 보니 시계가 너무 멋진 거다. 마음에 들었다. 그때부터 브랜드 자체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 구입한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는 크로노그래프 모델이었는데 차고 보니 생각보다 괜찮더라. 그전까지는 시계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에도 꾸준히 오데마 피게 시계를 구입했나.
사다 보니 유난히 오데마 피게가 많아지긴 했다.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만 해도 스리 핸즈 모델, 크로노그래프 모델 등 여러 개를 구입했다. 로열 오크도 그레이 다이얼 모델, 부티크 에디션의 블루 다이얼 모델, 스펙이 바뀌어 새로 산 시계 등이 있다. 로열 오크 점보 엑스트라 신도 좋아한다. 겉으로는 다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다른 카테고리 제품을 하나씩 구입하다 보니 이렇게 많아졌다.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와 로열 오크 중 어느 것을 더 선호하나.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 로열 오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알아본다. 과거 오데마 피게가 고객 대상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상당수가 오데마 피게 제품을 착용하고 왔다. 그때 코드 11.59를 차고 갔는데,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로열 오크를 차고 있더라. 돌연변이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로열 오크가 오데마 피게에서 가장 유명한 제품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시계 커뮤니티에서는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를 로열 오크를 구입하기 위해 실적 채우는 시계 정도로 취급한다. 외부에서의 시각은 잘 모르겠다. 나는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를 가장 좋아하고, 스스로 만족한다. 시계를 수집하는 분들도 모두 생각이 다를 것 같다. 가격대가 낮은 편이 아니고 현금화도 상대적으로 용이하니 일종의 자산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 심지어 투자 자산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되팔고 싶을 때 프리미엄이 붙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감가가 너무 많이 되는 시계는 다들 꺼려하는 것 같다. 하지만 좋아하는 시계를 구입하는 건 투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오늘 착용한 시계도 오데마 피게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다.
날짜창만 올라간 기본적인 모델이다. 대부분 브랜드에서 블루 다이얼 시계가 인기가 많다. 오데마 피게도 마찬가지다. 오늘 착용한 시계 역시 블루 다이얼인데, 선버스트 그러데이션 효과를 줘 은은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 좋다. 인덱스도 바통이나 로마 숫자가 아닌 아라비아 숫자라 가독성이 좋다. 시원시원한 느낌이 마음에 든다.
파텍 필립에서는 노틸러스를 구입했다.
노틸러스는 보자마자 사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부티크에서 구입할 방법이 없었다. 중고 시장에서 계속 알아봤다. 기본 모델을 사고 싶었는데 매물이 없었고, 컴플리케이션 모델이 있길래 좋은 기회로 구입했다. 오데마 피게 시계는 대부분 부티크에서 직접 구입했다. 중고 시장에서 시계 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상적인 루트로 구하기 힘든 시계가 많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유난히 오데마 피게 시계가 많아지기도 했다.
컬렉션을 살펴보면 럭셔리 스포츠 워치가 많다.
기본적으로 드레스 워치보다 스포츠 워치를 훨씬 좋아한다. 가죽 스트랩을 선호하지 않고, 너무 클래식하거나 틀에 박힌 디자인은 재미가 없다. 스포츠 워치 중에서도 지나치게 강렬한 시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럭셔리 스포츠 워치로 관심이 옮겨갔다.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는 드레스 워치로 볼 수도 있다.
사실 이 시계를 좋아하는 이유도 겉으로 보기에 간결하다는 점이다. 언뜻 드레스 워치처럼 보이지만, 시계를 돌려 측면을 보면 중간에 팔각형이 들어 있는 구조를 마주하게 된다. 일반적인 드레스 워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디테일이다.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약간 다른 포인트가 있는 점이 훌륭하다. 기본적이면서도 어느 정도 차별화된 디자인에 끌렸다.
아직 취향을 명확히 짚기가 어렵다.
경험해본 시계가 많지 않아서 점점 찾아가는 중이다.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싶다.
시계를 고르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
눈에 먼저 들어오는 건 단연 다이얼이지만, 사실 그보다 케이스백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다이얼은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글라스백 아래로 나타나는 무브먼트에 더 많은 요소가 보인다고 생각한다. 작은 부품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도 신기하다. 브랜드도 글라스백 아래에 보이는 로터와 무브먼트에 더 많이 신경 쓰지 않을까. 물론 다이얼도 고려하지만, 케이스백에 차별점이 있다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차별점이 있다는 건 어떤 뜻일까.
보여지는 모양 자체가 다른 거다. 간단하게는 로터의 모양이 특별한 게 있겠다. 눈에 띄는 로터가 좋다. 일반적으로 오데마 피게의 셀프와인딩 시계는 로터에 단순하게 ‘AP’ 로고를 새긴다. 그런데 간혹 말 모양 그래픽이 올라간 특별한 로터도 있다. 블루 다이얼의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는 로터의 말 모양이 좋아 구입했다. 다이얼은 비슷하지만 로터에서 차이가 난다.
좋은 시계란.
자신과 잘 맞고 잘 어울리는 시계다. 아무리 좋은 시계라도 남의 것을 찬 것처럼 보이거나 그렇게 느껴진다면 좋은 시계는 아니다. 여러 시계를 보고 깨닫게 됐다. 다른 사람의 피드백도 참고한다. 예전에 로열 오크를 차고 친구를 만난 적이 있는데, 내게 로열 오크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더라. 물론 피드백이 불변의 정답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1~2년 뒤 비슷한 시계를 차고 만났을 땐 시계가 내게 어울린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며 달라지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이런 여정이 시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꼭 사고 싶은 시계가 있다면.
진짜 좋아하는 시계를 찾지 못해서일까. 드림 워치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갖고 싶은 시계가 생기면 그때마다 사는 편이다. 요즘에는 독립 워치메이커가 만드는 시계를 보고 있다. 그런 시계를 경험해보고 싶기도 하다. 최근 보고 있는 브랜드는 F.P. 주른이다. 기본 모델부터 경험해보고 컴플리케이션 모델을 구하고 싶다. 최근 주문을 마친 시계도 하나 있는데, 2년 정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독립 시계 브랜드 정보는 어디에서 찾는가.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지는 않는다. 대신 정보 창구를 열어놓고 계속 보고 있다. 국내 시계 커뮤니티를 보다가 특정 브랜드나 시계에 관심이 생기면 해외 시계 커뮤니티나 다른 곳에서 정보를 찾아본다.
같은 시계를 오래 차고 다니는 편인가.
같은 시계를 일정 기간 찬다.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시계 보관함을 따로 갖고 있지 않다. 시계를 금고에 보관하기 때문에 조금만 차지 않으면 다 멈춘다. 시계를 와인딩하는 게 여러모로 번거로워 한번 맞추고 나면 일정 기간 그 시계를 착용한다.
가족과 함께 시계를 맞춘 적도 있나.
아내와 커플 시계로 로열 오크를 맞췄다. 사이즈와 다이얼 컬러만 살짝 다른 제품이다. 내 시계는 어두운 블루 다이얼 로열 오크, 아내 시계는 아이스 블루 다이얼 로열 오크다. 연애할 때 커플룩이나 커플 아이템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커플 시계는 하나 해보고 싶어서 로열 오크를 골랐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커플 시계는 코드 11.59 바이 오데마 피게다. 그동안 지름 40mm 이상으로만 출시되다 지난해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지름 38mm 모델이 나왔다. 굳이 여성용을 따로 사지 않더라도 사이좋게 같이 찰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삶에 있어 시계 수집이 갖는 의미가 궁금하다.
온전하게 자기 만족인 것 같다. 시계를 수집하면서도 주변에 잘 알리지 않는다. 아주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면 전혀 모를 정도다. 유명한 시계 커뮤니티에도 가입했지만 실명을 쓰지 않고 프로필 사진도 엉뚱한 것으로 등록해놓았다. 오프라인 모임도 거의 나가지 않는다. 좋은 시계를 모으는 취미를 굳이 남들이 알아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혼자 만족하는 나만의 소소한 취미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시계를 바라보곤 한다. 그리고 한 번씩 시계를 바꿔 착용할 때 뿌듯함을 느낀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시계를 바꿔 차려고 하는 편인데, 뭘 골라서 다시 세팅할지 고민한다. 그 시간마저 재밌게 느껴진다. 시계를 구경하며 ‘이런 것도 있구나, 저런 것도 있구나’ 하며 즐거워한다.
게재호
97호(2025년 3/4월호)
Editor
서지우
사진
박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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