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나 금고에 보관만 하는 시계는 아무 의미 없어”

<크로노스코리아> 본지 <워치타임> 독일은 까르띠에의 이미지·스타일·헤리티지 디렉터 피에르 라이네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까르띠에의 유산과 혁신을 형성하는 가치와 철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용


Pierre Rainero 피에르 라이네로 | 까르띠에 이미지·스타일·헤리티지 디렉터

까르띠에에서 40년간 근무한 그는 1984년 입사 이후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을 비롯해 연구 및전략을 책임지며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2003년부터는 이미지·스타일·헤리티지 디렉터로서 까르띠에의 스타일과 역사적 고증을 총괄했다. 아카이브를 관리하며 약 3000점의 작품으로 구성된 까르띠에 컬렉션을 책임지는 인물도 그다.까르띠에 전시회를 기획하는 전세계 박물관 및기관과의 협력 담당자로도 활동하고 있다.까르띠에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있어 이상적인 인터뷰 대상자다.



까르띠에의 이미지,스타일,헤리티지를 보존하기 위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

우리의 목표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창작물을 개발하고,설립자들의 핵심 가치를 현대적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175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우리는 형태를 계속 발전시켜나가야 할책임을 느낀다.루이 까르띠에(Louis Cartier)는까르띠에 가문의 3세대를 대표하며,장식 예술 분야에서 독창적인 예술적 표현을 만들어내겠다는 비전을 추구했다.이비전은 두가지 중요한 차원을 포함한다. 첫번째는 아름다움의 새로운 표현 방식을 탐구하는 미학적 비전,두번째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호기심이다.우리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고,우리 작품들이 그들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동행할 수있는지를 이해하고자 한다.



 

까르띠에의 주얼리는 문화와 삶의 상징적 가치를 담고 있다.

주얼러로서 우리는 작품이 지닌 상징성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 그 상징성이 다양한 문화 속에서 맡는 역할도 우리에겐 귀중하다. 까르띠에는 우리의 호기심과 변화에 대한 감각을 통해 지속적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루이 까르띠에의 인터뷰 기록은 아주 드물다. 그중 1927년의 인터뷰에서 그는 “주얼리는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도 변화하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새로운 것에 대한 열린 마음과 미적 탐구에 대한 열망은 까르띠에의 핵심 가치다. 내 역할은 까르띠에의 모든 새로운 창작물이 이 두 가지 원칙을 반드시 충족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까르띠에의 역사를 보존하면서 고객의 변화하는 요구를 어떻게 충족하는가.

앞서 언급한 호기심과 혁신 외에도 몇 가지 중요한 가치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창작 그 자체는 매우 강력한 행위다. 우리가 끊임없이 새롭고 독창적인 시도를 하도록 이끈다. 또 다른 핵심 가치는 탁월함에 대한 헌신이다. 우리는 높은 기준을 초월하려는 노력을 통해 탁월한 품질을 달성한다. 이러한 공동 문화는 우리의 모든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고객 만족을 최우선 과제로 삼도록 유도한다. 단순한 존중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책임 의식이다.

지속 가능성은 또 하나의 중요한 원칙이다. 우리는 순간을 넘어 미래와 세대를 위한 작품을 창조한다. 지속 가능성은 디자인과 품질 모두에 영향을 미치며, 각 작품이 시대를 초월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우리의 작품은 단지 시간의 시험을 견디는 결과물이 아니다. 미적, 이상적 가치 면에서도 중요성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졌다.


오늘날과 미래에 매력적이고 실용적인 디자인이란.

우리는 기준이 명확하다. 물론 어느 정도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특정 디자인이 지나치게 시대적 흐름에 얽매였다고 판단되면, 우리는 본질로 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하거나 피상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특정 시대에 국한되는 디자인 요소를 배제한다. 시대적, 문화적 환경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대신 이러한 요소가 디자인에 진정성을 부여한다. 미래에도 중요한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이다. 어느 시기에 창조됐는지 알 수 있어도 그 작품이 가진 의미와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진정으로 중요한 점이다.



 

까르띠에는 많은 아이콘을 탄생시켰다. 진정한 아이코닉 디자인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 ‘아이코닉(iconic)’이라는 표현을 자제하려 한다. 본질적으로 창작자나 브랜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이코닉하다고 불릴지 여부는 오직 고객, 그것도 한 세대가 아닌 여러 세대에 걸친 고객의 판단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팬더(Panthère) 같은 디자인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랑받으며 시대를 초월한 존재감을 입증했다. 이러한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만드는 데 있어 핵심 가치는 본질을 추구하는 노력일 뿐이다.

까르띠에 시계는 디자인 순수성을 뚜렷이 추구한다. 순수성 역시 우리가 조심스럽게 다루는 용어다. 까르띠에는 장식을 범죄라고 표현한 건축가 아돌프 루스와는 다르게, 장식을 중요한 디자인 요소로 본다. 장식의 역할은 까르띠에에서 명확하게 정의되어 전체적인 조화와 일체감을 더하는 데 기여한다. 특히 시계에서 이 원칙은 루이 까르띠에가 브랜드 역사 초기에 직접 확립한 연구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나타났다.


“우리는 현재만 생각하지 않는다. 미래와 세대를 넘어 지속될 물건을 창조한다.”


이 가치를 훌륭하게 구현한 모델은 탱크 루이 까르띠에다. 이 모델은 1917년 최초의 탱크 모델과 비교해 두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첫째, 두 개의 평행한 금속 샤프트가 더 부드럽고 둥근 형태로 디자인됐다. 오리지널 탱크 형태보다 중심 요소로 강조된다. 둘째, 다이얼 상단과 하단의 선이 제거되어 디자인이 더 순수하게 보인다. 흥미롭게도 이 모델은 우리 아카이브에서 ‘루이 까르띠에’로 분류된다. 그가 직접 탱크의 샤프트를 단순화하자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다이얼과 두 개의 금속 선은 우리의 본질이며, 그에 대한 환원은 우리가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을 보여준다. 산토스부터 토노와 똑뛰, 탱크에 이르기까지 까르띠에 시계의 발전을 살펴보면 이상적인 비율과 본질적인 디자인을 추구해온 노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유산을 보존하면서 혁신을 추진하는 데에도 도전이 있었나.

우리는 매우 구체적이다. 스스로의 신화를 등에 업고 끌려가지 않으려고 한다. 창작과 디자인의 도전에 적극적으로 맞선다. 우리의 작업 방식은 정밀하고 실용적이다. 가장 큰 도전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우리의 작업을 오늘과 내일 모두 관련성 있게 유지하는 것이다. 이 역시 일종의 모험이다.

우리가 쌓아온 경험과 유산, 그리고 세대 간 교류를 통해 많은 지식을 얻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사람은 경험이 적을수록 모든 것을 안다고 자부하기 쉽다. 그래서 모든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 결국 대중이 우리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시간의 시험이다.


아이콘에 관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만약 목표가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창조하는 것이라면, 오직 시간과 사람들만이 우리가 성공했는지 말해줄 것이다.


 

탱크 루이 까르띠에 라지 모델. 옐로 골드 케이스에 매뉴팩처 무브먼트를 결합했으며, 사파이어 카보숑이 장식된 비즈 형태 크라운, 블랙 래커 처리된 다이얼, 그리고 옐로 골드 컬러로 마감된 스틸 소재의 검 모양 소드 핸즈로 완성됐다. 1980만원.


트렌드가 까르띠에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가.

우리는 우리만의 길을 따른다. 까르띠에 디자이너들은 외부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방향성을 발전시킬 자유를 지닌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주변 세계에서 아무 영향도 받지 않겠다고 순진하게 주장하는 건 아니다. 우리 모두는 동시대의 문화적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전 세계의 디자이너, 건축가, 예술가들과 유사한 창조적 영향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기에 가끔 그런 병행적인 발전이 일어난다. 갑자기 모두가 오렌지 컬러를 사용하는 모습은 집단적인 의식처럼 보인다. 트렌드는 공기 중에 떠도는 공동의 아이디어에 가깝다. 의식적으로 선택된다기보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시계 디자이너뿐 아니라 건축가, 예술가들 그리고 다른 창작자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동일한 맥락과 세계를 공유하기 때문에 때때로 비슷한 발견을 한다.

매우 흥미롭다. 우리의 디자인은 시대를 초월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새로운 창작물은 오늘날의 요소를 불가피하게 내포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럭셔리는 진정성을 지키며 취향을 제약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자유다. 까르띠에에서의 럭셔리는 시장의 압박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의 가치에 충실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고객에게 있어 럭셔리는 자신을 실현하고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자유다. 이는 내가 까르띠에에 있는 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현재 가장 좋아하는 시계는 무엇이며, 새로운 시계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실제로 그 시계를 착용할 수 있을지 여부다. 좋아하는 모델이 많지만, 그 시계가 내 삶에서 진정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지를 따진다. 박스나 금고에 보관만 하는 시계는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시계는 현재로선 탱크 시계다.


가장 좋아하는 탱크 모델은.

(인터뷰를 하는) 지금은 블랙 컬러 다이얼의 탱크 시계를 착용하고 있다. 이 모델이 정말 마음에 든다. 난 컬러 다이얼을 매력적으로 생각한다. 이 모델은 루이 까르띠에의 비전을 잘 반영한 시계다. 그는 탱크 디자인을 통해 극도로 단순하고 순수한 객체를 추구했다. 숫자 인덱스 없이 한 가지 색상의 어두운 다이얼을 가진 시계는 탱크 디자인이 지닌 명확함과 순수함의 느낌을 더욱 강조한다.


시계와 관련된 특별한 기억이 있다면.

그리 유쾌한 기억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까르띠에 시계를 진정으로 원하게 된 계기는 내 첫 까르띠에 시계가 도난당했을 때였다. 1980년대의 일이었고, 나의 첫 번째 골드 까르띠에 시계는 1970년대 엘립스 모델이었다. 그 도난 사건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시계를 잃고 나서야 내게 얼마나 특별한 의미가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 시계를 다시 찾았나.

아쉽게도 찾지 못했고, 나중에 새 모델을 구입했다. 첫 번째 시계는 두 가지 골드 톤으로 이루어졌지만, 내가 구입한 새 시계는 화이트 골드로 만들어졌다.


인생에 있어 첫 번째 시계를 기억하는지.

아홉 살 때 받은 시계다. 브랜드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계는 골드 컬러였다. 아마도 도금된 시계였을 것이다. 어린이에게 금시계를 줄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난 그 시계에 정말 자부심을 느꼈다. 그 기억은 오늘날까지도 생생하다.

아마 지금은 어머니가 그 시계를 차고 있을 것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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