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근원인 물의 원소 기호를 연상케 하는 H2.0은 HYT가 만든 다양한 현대판 물시계 중 고성능 라인에 이름을 올린다. 롱 파워리저브를 지원하는 출중한 제원의 무브먼트와 함께 개방감을 극대화한 독창적인 구조로 기계적인 매력까지 한껏 드러낸다.
H2.0 그린
Ref. 251-AD-46-GF-RU(25개 한정)
기능 유체로 표시하는 시·분,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크라운 인디케이터, 온도 표시기
무브먼트 핸드와인딩, 21,600vph, 28스톤, 8일 파워리저브
케이스 지름 51mm, 블랙 DLC 코팅 스테인리스스틸, 30m 방수, 글라스백
가격 1억3000만원대
시간은 흐르는 물처럼
2000년대 초반 스위스 뇌샤텔에서는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시곗바늘이나 디지털로 표시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흐르는 물과 같은 액체로 시간을 표현해야 한다’라는 발상이 세워진다. 2012년 탄생한 HYT는 이처럼 도전적이지만 한편으로 무모해 보이는 발상을 실현하기 위해 브랜드의 문을 열었다. 이름에는 ‘Hydro Mechanical Horologists’라는 의미를 담아 끊임없는 시간의 흐름을 시계로 표현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액체는 기계식 시계에 있어 주요 경계 대상의 하나다. 부품을 손상시키는 외부의 충격, 주로 헤어스프링을 공격해 가지런한 소용돌이 형태를 흐트러뜨리는 자성에 이어 케이스 내부로 흘러 들어가면 치명상을 입히는 것이 액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액체는 시계에 위협적이면서 물성도 이질적이다. 시계의 역사를 보면 물시계에서 액체를 사용한 적은 있지만 자체적인 동력원을 이용해 시간을 표시하기 시작한 이후, 즉 기계식시계의 꼴을 갖춘 다음부터 액체는 윤활유 정도를 제외하면 연이 없었다. 물을 다뤄 시간을 표시하겠다는 HYT의 물의 연금술사들은 10년에 걸친 연구 끝에 마침내 해법을 고안해냈다. 기계식 무브먼트의 타임 키핑을 기반으로 시간 표시를 액체에 맡겼다. 이를 통해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다’라는 발상을 실현한 셈이다.
시간을 표시할 액체는 두 가지 특수 용액으로 나뉜다. 하나는 색깔을 입힌 것이고, 다른 하나는 투명이다. 각각 지름 0.8mm 글라스 소재의 캐필러리 튜브(Capillary Tube)에 담기며, 두 개의 벨로즈(Bellows)가 밀어내는 힘으로 이동한다. 이때 두 액체는 팽팽하게 경계면을 유지해야 기능할 수 있다. 경계면이 붕괴되어 섞이기 시작하면 시간을 표시할 수 없을뿐더러, 값비싼 액체를 새로 주입하거나 모듈 전체를 교환해야 한다. HYT는 분자의 반발력을 이용해 경계면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액체를 다루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액체의 유동적이며 섞일 수 있다는 성질 외에도, 기압과 온도 변화에 의해 부피가 변화하는 점을 고려해야 했다. 액체 자제가 인디케이터, 즉 시침 역할을 수행하므로 부피 변화는 시간 표시의 오류를 뜻했다. 벨로즈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액체를 이동시키는 역할과 동시에 부피 변화 시 일정량을 수용해 인디케이터(시침)의 길이 변화를 보정한다. 그 외에도 캐필러리 튜브 안쪽에 액체 일부가 붙거나 분리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내부를 코팅했다. 또 컬러 액체는 색이 변하거나 자외선을 접하는 것을 고려해 내성을 갖춰야했다. 가독성도 빠질 수 없다. 뚜렷한 컬러는 물론 어두운 곳에서도 빛을 내려면 야광성능까지 필요했을 터이다. 물의 연금술사들은 의료, 화학, 우주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총동원해 각종 난제를 해결했다. 어쩌면 금보다 비쌀지도 모르는 마법의 액체는 자회사인 프레시플렉스(Preciflex)에서 공급하며, 이제는 시계 이외의 분야에서도 활용을 모색 중이다.
H2.0에 탑재한 무브먼트의 분해도. 8일의 롱 파워리저브를 비롯해 각종(파워리저브, 크라운, 온도) 인디케이터를 지원하는 고성능답게 HYT의 무브먼트 중 가장 복잡하다.
현대판 물시계의 여정
HYT는 두 개의 액체를 넣은 캐필러리 튜브와 벨로즈를 플루딕 모듈(Fludic Module)이라 부르며, 이것을 이용한 시간 표시를 리퀴드 타임 디스플레이(Liquid Time Display)로 명명했다. 독창적인 이 시스템은 2012년 H1으로 첫 데뷔를 이룬 이래, 현재까지 라인업을 지배하는 메커니즘이다. HYT는 H1을 시작으로 2013년 H1의 콘셉트를 기반으로 기계적인 디테일을 드러낸 H2를 발표했다. 그로부터 2년 뒤에는 원형 캐필러리 튜브에서 직선의 리니어 튜브를 활용한 H3를 선보였다. 리니어 구조는 원형 캐필러리의 길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구조인 점을 보완하기 위한 롤링 인디케이터를 더해전체 구성에서 확실한 차별점을 보여줬다. 리퀴드 타임 디스플레이를 계승했으나 디테일이나 메커니즘에서 변화와 제한성을 극복한 진보적인 발걸음이었다. 같은 해 등장한 H4는 H1을 베이스로 일종의 초소형 발전기인 다이나모를 구축해 초소형 LED를 구동한다. 버튼을 누르는 힘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원리이므로 기계식 시계의 순수성을 유지하면서도 특유의 화려함을 배가시킨 것이다. 2017년에 접어들며 HYT는 신모델인 H0의 공개와 함께 라인업 개편을 단행했다. 이제까지 H와 숫자의 조합으로 만든 라인업의 이름은 리셋을 뜻하는 0을 더해 H1.0, H2,0으로 변경했다. 케이스 디자인과 디테일은 현대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전통적인 러그 대신 케이스에 러버 밴드를 직접 연결했고,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는 케이스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넓은 면적으로 성형했다. 모던함과 개방감을 극대화한 점이 디자인 변경의 핵심이었다. 이후 2019년 새로 등장한 H5는 HYT의 테마인 시간의 흐름을 무브먼트 디테일로 보여주었고, 라인업 전반에 걸쳐 스스로의 테마를 다시 한번 명확하게 조명했다.
H2의 백미 중 하나인 케이스 측면. 야광물질까지 채워 넣어 정교하게 제작한 아워 인덱스가 빼어난 입체감을 드러낸다.
HYT 연금술사의 물, H2.0
HYT의 시계는 캐필러리 튜브와 한 쌍의 벨로즈로 구성하는 플루딕 모듈이 기본이다. 프레시플렉스의 정밀한 액체 삽입과 세팅으로 구현하는 플루딕 모듈은 무브먼트 스페셜리스트인 크로노드(Chronode SA)와 오데마 피게 산하의 오데마 피게 르노 에 파피(APRP)가 협력해 하나의 시스템을 완성한다. 물의 원소기호 H2O를 연상시키는 라인업 H2.0 역시 플루딕 모듈을 사용하지만 최초 형태인 H1.0(H1)과 달리 벨로즈를 알파벳 V모양으로 배치한다. 벨로즈를 좌우로 벌린 공간은 기어트레인으로 채우고, 스몰 다이얼의 작은 바늘 대신 큼직한 분침을 연결했다. 그 좌우로는 크라운 포지션 인디케이터와 온도 인디케이터가 위치한다. 크라운 포지션 인디케이터는 중립, 와인딩, 시간 조작을 시각적으로 표시한다. 타임 온리 기능의 일반적인 크라운 포지션 인디케이터처럼 보이지만 중요성은 더 크다. 액체의 이동을 통해 시간을 표시하는 리퀴드 타임 디스플레이의 특성상 시간 조작은 다소의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크라운 포지션을 잘못 인식한 오조작은 시간을 확인할 수 없는상황을 만들며, 크라운 포지션 인디케이터는 이것을 방지하고자 한다. 온도 인디케이터는 다소 생소하다. 플루딕 모듈과 연관된 온도 인디케이터는 HYT가 설정한 기준 온도인 15℃ 미만, 즉 인디케이터가 하얀색을 가리킬 때는 사용환경에 유의하라는 의미다. 액체의 민감함을 드러낸다고 할 수도 있지만, HYT의 시계를 즐기는 데 있어 충분히 감수할 만한 불편함이다.
H2.0의 다이얼 12시 방향에는 큼지막한 밸런스가 입체적인 디자인의 브리지와 함께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낸다. 캐필러리 튜브는 무브먼트의 주요 부품을 안고 외곽을 따라 놓여 있다. H2.0를 정면에서 보면 5분 인덱스를 확인할 수 있으나, 각각의 인덱스는 12시 방향을 제외하면 30° 균등분할에서 어긋나 있다. 캐필러리 튜브와 벨로즈를 잇는 연결부분이 인덱스가 있어야 할 6시 방향 중심에 위치한 이유에서다. 30분 인덱스가 2개인 것도 같은 이유다. 5분 인덱스의 아래쪽으로는 아워 인덱스가 자리한다. 구조상 다이얼 정면보다 측면에서 더 잘 보인다. 케이스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면적을 차지하는 글라스는 현대적인 디자인을 연출할뿐더러, 입체적인 아워 인덱스의 독특한 배치를 위한 여유공간을 만들어낸다. 각 인덱스 역시 균등분할이 아니지만 시간을 읽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다. 다이얼은 무브먼트의 주요 구성부와 인디케이터가 자리해 의도적인 복잡함을 표현한 반면, 글라스백은 상대적으로 심플하다. 스켈레톤 기법을 적용한 두 개의 배럴은 8일의 파워리저브를 보장하며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를 겸한다. 배럴 속 메인 스프링의 와인딩 정도로 파워를 가늠하는 심플한 방식이나 시각적 재미가 있다. 고급시계에 걸맞은 무브먼트 피니싱과 플루딕 모듈의 액체에 맞춰 다양한 컬러를 활용한 플레이트 또한 돋보인다. 모델에 따라서 플레이트에 기요셰 가공을 넣어 클래식 디테일을 차용하기도 한다. H2.0은 이처럼 리퀴드 타임 디스플레이에 따른 필연적이지만 제한적인 기능성과 구조를 컬러와 디테일의 조합으로 극복하며 다양성을 선사한다.
H2.0은 알파벳 V자 모양으로 설치한 벨로즈와 그에 맞춰 무브먼트의 메커니즘을 드러낸 오픈워크 구조가 특히 매력적이다.
H2.0 블랙
Ref. 251-AD-467-BF-RU(5개 한정)
기능 유체로 표시하는 시·분,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크라운 인디케이터, 온도 표시기
무브먼트 핸드와인딩, 21,600vph, 28스톤, 8일 파워리저브
케이스 지름 51mm, 블랙 DLC 코팅 스테인리스스틸, 30m 방수, 글라스백
가격 1억7000만원대
HYT LINE UP
HO
2017년 H0의 등장과 함께 HYT의 디자인은 모던 스타일로 변화했다. 투박한 러그 대신 케이스 하단면으로 직접 스트랩을 연결한 게 대표적. 케이스백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글라스로 덮는 구조 역시 H0을 통해 먼저 선보였다. H0에서 플루딕 모듈의 벨로즈는 다이얼을 절개해 일부만 드러내 호기심을 자아낸다. 멀티 레이어 다이얼은 입체적인 구성과 다채로운 컬러로 다양함을 꾀했다. 각종 인디케이터의 디자인, 스트랩의 컬러나 디테일 또한 전체적인 흐름과 조화를 이룬다.
Ref. H02387 기능 유체로 표시하는 시·분·초,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무브먼트 핸드와인딩 501, 28,800vph, 41스톤, 65시간 파워리저브 케이스 지름 48.8mm, 블랙 DLC 코팅 스테인리스스틸, 30m 방수, 글라스백 가격 5000만원대 |
Ref. 048-DL-93-BF-RU 기능 유체로 표시하는 시·분·초,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무브먼트 핸드와인딩, 28,800vph, 35스톤, 65시간 파워리저브 케이스 지름 48.8mm, 블랙 DLC 코팅 스테인리스스틸, 30m 방수, 글라스백 가격 5000만원대 |
Ref. 048-GD-94-RF-CR
기능 유체로 표시하는 시·분·초,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무브먼트 핸드와인딩, 28,800vph, 35스톤, 65시간 파워리저브
케이스 지름 48.8mm, 옐로골드, 30m 방수, 글라스백
가격 7000만원대
H1.0
대칭을 이루는 벨로즈 배치와 스몰 다이얼 구성은 H0과 유사하다. 대신 H1.0은 오픈 워크 다이얼로 부품 노출에 따른 기계적 느낌과 개방감을 동시에 드러낸다. 케이스 측면은 아워 인덱스가 링처럼 감싸고 있어 정돈된 인상이다. H0, H1.0, H2.0 순으로 갈수록 다이얼 개방감과 부품의 노출도가 증가하므로, H1.0은 중간 정도에 해당한다. 플루딕 모듈의 액체는 RGB 컬러의 삼원색과 블랙을 사용하며, 이를 중심으로 전체적인 케이스와 디테일 컬러 역시 결정한다.
Ref. H02022
기능 유체로 표시하는 시·분·초,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무브먼트 핸드와인딩, 28,800vph, 35스톤, 65시간 파워리저브
케이스 지름 48.8mm, 앤트러사이트 DLC 코팅 스테인리스스틸, 30m 방수, 글라스백
가격 7000만원대
SOONOW
시간의 흐름은 순나우(Soonow)로 명명한 라인업에서 다른 형식으로 구체화된다. 인간이라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시계로 고찰하곤 한다. 죽음을 떠올리는 해골 모양 캐필러리 튜브와 무수한 핀은 순나우의 특징적인 디테일이다. 플루딕 모듈의 배경이 되는 다이얼은 대체로 형형색색이며, 서로 보색 대비를 이뤄 강렬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여기에 잼세팅을 더한 모델은 화려함까지 보여주는데, 이는 무겁고 어두운 죽음을 HYT 특유의 시각과 감성으로 다뤄냈기때문일 것이다.
Ref. H02235
기능 유체로 표시하는 시·분,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무브먼트 핸드와인딩, 28,800vph, 35스톤, 65시간 파워리저브
케이스 지름 48.8mm, 스테인리스스틸, 30m 방수, 글라스백
가격 1억원대
H5
2019년 가세한 최신형 H5는 시간의 흐름을 디테일로 표현하고자 했다. 새롭게 도입한 칼리버 501은 대형 캠과 레버를 통해 보다 정교하게 벨로즈를 제어한다. 이것은 더욱 정확한 시간 표시를 목표로 삼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H5는 그 시간의 흐름을 벨로즈와 다이얼의 경계부에 단층과 같은 디테일로 나타낸다. 구조적으로는 H1.0과 유사하지만 슈퍼 루미노바를 채운 일체형 야광 인덱스 덕분에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빼어난 입체감을 드러내는 각각의 인덱스는 3D 프린트와 사출성형으로 정교하게 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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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H02351 기능 유체로 표시하는 시·분·초,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무브먼트 핸드와인딩 501, 28,800vph, 41스톤, 65시간 파워리저브 케이스 지름 48.8mm, 스테인리스스틸, 30m 방수, 글라스백 가격 7000만원대 |
Ref. H02353 기능 유체로 표시하는 시·분·초,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무브먼트 핸드와인딩 501, 28,800vph, 41스톤, 65시간 파워리저브 케이스 지름 48.8mm, 스테인리스스틸, 30m 방수, 글라스백 가격 7000만원대 |
문의 타임팰리스 02-3449-5992
게재호
73호(2021년 03/04월호)
글
구교철(타임포럼 편집장)
Editor
장종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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