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패덤즈

‘다섯 길 바닷속에 그대 아버지 누워 있고(Full fathom five thy father lies).’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 ‘템페스트(The Tempest)’에서 따온 이름, 피프티 패덤즈. 탄생과 함께 현대 다이버 워치의 규칙과 사양을 설정한 후 반세기 넘게 다이버 워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은 전통에 대한 오마주와 더불어 신소재에도 꾸준히 매진한다. 블랑팡 오션 커미트먼트 프로젝트를 통해 해양 보호에도 앞장서고 있다.

내용

세라믹 다이얼을 적용한 피프티 패덤즈 오토매틱 신제품. 


피프티 패덤즈 오토매틱

Ref. 5015-3603C-63B

기능 시·분·초, 날짜

무브먼트 셀프와인딩 1315, 28,800vph, 35스톤, 5일 파워리저브

케이스 지름 45mm, 레드골드, 300m 방수, 글라스백

가격 4200만원대





최초의 현대 다이버 워치 

1950년 블랑팡 CEO에 오른 장-자크 피슈테르는 뛰어난 다이버이기도 했다. 그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수중 탐험에 함께할 수 있는 믿음직스러운 다이버 워치의 부재였다. 길잡이로 삼을 만한 선례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완전히 새로운 장르의 시계를 고안해야 했다. 먼저 다이버 워치의 기본 사양을 정의하는 일부터 착수했다. 빛을 발하는 바늘, 어두운 다이얼과 대비를 이루는 인덱스, 단방향 회전 베젤, 항자성 케이스, 완전한 방수 등이었다. 한편 1952년 초 프랑스 군에 엘리트 전투 다이버 부대를 창설한 로베르 밥 말루비에르 대위와 클로드 리포 중위도 비슷한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썩였다. ‘프로그맨’이나 ‘씨파이터’라고 불리며 깊은 물속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전투 다이버는 물속에서도 고장이 나지 않는 튼튼한 시계를 착용해야 했다. 시중에 나온 많은 시계를 테스트했지만 조건에 맞는 건 없었다.

그러던 중 블랑팡이 프랑스 남부에서 새로운 다이버 워치를 테스트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1953년 그들은 함께 힘을 합쳐 기준을 완전히 충족하는 시계를 만들었다. 지름 42mm의 커다란 케이스, 블랙 다이얼에 도형으로 표시한 인덱스, 공기통의 남은 시간을 알 수 있도록 눈금을 새긴 단방향 회전 베젤을 갖췄고, 모든 표식은 야광 처리해 야간 가독성도 뛰어났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방수 기능이었다. 당시의 다이버가 잠수할 수 있는 최대 수심은 100m가 채 되지 않았다. 영미권에서 수심을 재는 단위인 ‘패덤(Fathom, 성인 남자가 두 팔을 벌린 길이)’으로 환산하면 대략 50패덤즈(91.45m)다. 블랑팡의 새로운 다이버 워치는 스크루 방식 케이스백과 블랑팡이 새롭게 개발한 더블 O링 개스킷의 크라운을 통해 그 수치를 만족하는 방수성을 달성해냈다(스크루 방식 크라운은 특허 문제 때문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태엽을 감기 위해 크라운을 자주 뺄 필요가 없도록 셀프와인딩 무브먼트를 탑재한 장-자크 피슈테르의 결정도 큰 몫을 했다. 수심 150~200m에서도 견디곤 했던 블랑팡 다이버 워치는 최대한의 방수를 보장하는 유일한 다이버 워치였고, 프랑스 엘리트 전투 다이버 부대는 그 시계를 필수 장비로 선택했다.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다이버 워치의 시초로 꼽히며 많은 마니아를 거느린 피프티 패덤즈의 탄생이었다. 사실 그 이름에는 한층 낭만적인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어 있다. ‘바다’나 ‘잠수’ 같은 너무 직설적인 이름을 피하고 싶었던 장-자크 피슈테르는 세익스피어 ‘템페스트’의 작중 대사인 ‘Full fathom five thy father lies’를 듣고 무릎을 쳤고, 그 운율을 변형해 피프티 패덤즈라고 명명했다. 이후 피프티 패덤즈는 이스라엘, 스페인, 독일, 미국 해군에서도 활약했으며 민간 다이버를 위해 다이빙 전문 매장에서 판매되기도 했다.


1953년의 피프티 패덤즈. 



신세기의 피프티 패덤즈 

한 시대를 풍미한 피프티 패덤즈는 쿼츠 쇼크를 지나 새천년에 들어서 다시 부상하기 시작했다. 크고 강인한 시계가 트렌드로 떠오르며 롤렉스, 오메가, 오데마 피게 등 걸출한 스포츠 워치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졌다. 블랑팡도 피프티 패덤즈를 다시 꺼내들었다. 1999년에 소개한 피프티 패덤즈의 새로운 버전은 숫자를 각인한 금속 베젤 때문에 과거와는 사뭇 다른 인상이었다. 확실히 역동적인 느낌이었지만 1953년의 오리지널과는 개연성이 낮아 보였다. 블랑팡도 그것을 인지한 듯 2007년 지름 40mm 한정판을 통해 피프티 패덤즈를 오리지널에 최대한 가까운 디자인으로 다시 다듬었다. 돔형 베젤을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로 만든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레귤러 에디션에서 케이스 크기를 지름 45mm로 키우며 방수도 300m로 늘리는 등 현대의 흐름에 발맞춰 나머지 사양을 끌어올렸다. 인하우스 셀프와인딩 칼리버 1315를 탑재한 기본 모델 외에도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플라잉 투르비용을 탑재한 컴플리케이션까지 라인업도 공격적으로 확장했다.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푸시버튼에는 물속에서도 작동이 가능하도록 특수한 시스템을 장착했다. 2009년과 2011년, 빅사이즈 트렌드가 극에 달할 즈음에는 1000m 방수가 가능한 지름 47mm의 500 패덤즈와 지름 55.65mm 티타늄 케이스에 최대 90m의 수심을 측정할 수 있는 X 패덤즈를 출시하기도 했다.

2013년, 몸집을 키울 만큼 키운 피프티 패덤즈는 탄생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방법으로 컬렉션의 다양성을 넓혔다. 아카이브에 잠들어 있던 모델을 복원한 바티스카프 라인업을 추가한 것이다. 돔형 베젤을 앞세워 용량감을 자랑하는 피프티 패덤즈와 달리 바티스카프 모델은 평면적인 디자인이 특징이다. 인덱스와 핸즈의 모양도 훨씬 간결해 오히려 현대적으로 보인다. 여성용은 물론 나토나 패브릭 스트랩을 매치해 오리지널 피프티 패덤즈와는 다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장-자크 피슈테르도 원래 여성 다이버나 일반 사람이 일상에서도 착용할 수 있는 콘셉트를 원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확고한 역사를 기반으로 탄탄한 컬렉션을 확립한 피프티 패덤즈는 지금도 활발하게 새로운 모델과 라인을 전개한다. 과거에 활약한 다양한 에디션을 발굴·복원해 과거의 피프티 패덤즈 고유의 매력을 더욱 높이는 한편, 세라믹을 다이얼에 적용하는 등 신소재 도입에도 적극적이다. 이런 방대한 아카이브와 무한한 가능성이 피프티 패덤즈를 영원한 고전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피프티 패덤즈 탄생에 지대한 공을 세운 블랑팡 전 CEO 장-자크 피슈테르. 그는 프로 다이버이기도 했다.




피프티 패덤즈 신제품

올해 블랑팡은 ‘타임 투 무브’를 통해 피프티 패덤즈의 새로운 제품을 소개했다. 총 네 가지 제품 중 피프티 패덤즈 바라쿠다와 피프티 패덤즈 네저르 드 컴뱃, 이 두 가지 한정판은 과거에서 건져 올린 피프티 패덤즈의 또 다른 조각들이다.

1953년 이후, 전문 다이빙 장비로 인정받은 피프티 패덤즈에 프랑스 해군뿐 아니라 독일 해군도 관심을 보였다. 당시 다이버 장비 전문 업체 바라쿠다는 독일 해군에 피프티 패덤즈를 납품하며 민간용 버전도 독일 시장에 소개했다. 이 모델도 아주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직사각형의 투톤 인덱스, 하얗게 칠한 바늘, 흰색 테두리를 둘러 가독성을 높인 3시 방향 날짜창 디스플레이를 갖춘 독특한 모델이었다. 블랑팡은 새로운 한정판을 바로 이 모델에서 착안했다. 피프티 패덤즈 리미티드 에디션에서 고수하는 지름 40mm로 선보여 원작의 느낌과 비슷하다.

피프티 패덤즈 네저르 드 컴뱃도 피프티 패덤즈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블랑팡은 프랑스 엘리트 전투 다이버 부대의 창립자들과 긴밀한 협업을 기념하는 스페셜 에디션을 만들고 싶었다. 프랑스 해군은 이 계획을 지지하며 블랑팡에게 ‘전투 다이버 배지(Combat Diver Qualification Badge)’를 각인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새 모델의 케이스백에서 닻과 날개, 그리고 두 개의 해마로 이루어진 배지 각인을 찾아볼 수 있다. 시계 다이얼에는 엘리트 전투 다이버 부대와 관련한 또 하나의 상징인 숫자 ‘7’이 자리한다. 일반 공기통을 메고 입수하는 비포화 잠수 시, 질소마취 및 산소중독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 안전 한계수압 7바(Bar, 약 수심 60m)를 뜻한다. 지금처럼 공기통과 다이빙 컴퓨터가 발달되기 전인 1950년~1980년대에 엘리트 전투 다이버의 생명과 직결되는 숫자였다. 검은색 무광 다이얼에서 빛을 받으면 단번에 번쩍이며 이 다이버 워치의 용도와 의미를 상기시킨다.

한정판 외 새로운 피프티 패덤즈 오토매틱은 컬러와 소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블루 컬러의 골드 모델은 세라믹 다이얼을 사용했고, 기존의 오토매틱 모델에는 티타늄 케이스를 추가했다. 바티스카프 베젤을 통해 세라믹 제작 경험을 쌓은 블랑팡은 코발트처럼 깊이 있는 색감의 세라믹으로 다이얼을 완성했다. 다이얼 중앙의 선버스트 가공과 매트한 가장자리의 대비도 매력적이다. 한편 티타늄 모델은 특유의 가벼운 무게 덕분에 피프티 패덤즈 오토매틱의 크기 부담을 줄여준다. 많은 장비를 챙겨야 하는 다이버는 물론, 스포츠 워치를 매일 착용하고 싶은 도시인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피프티 패덤즈 바라쿠다

Ref. 5008B-1130-B52A(500개 한정)

기능 시·분·초, 날짜

무브먼트 셀프와인딩 1151, 21,600vph, 28스톤, 약 4일 파워리저브

케이스 지름 40.3mm, 스테인리스스틸, 300m 방수, 글라스백

가격 1600만원대


피프티 패덤즈 오토매틱 

Ref. 5015-12B30-B52A

기능 시·분·초, 날짜

무브먼트 셀프와인딩 1315, 28,800vph, 35스톤, 5일 파워리저브

케이스 지름 45mm, 티타늄, 300m 방수, 글라스백

가격 1800만원대




피프티 패덤즈 네저르 드 컴뱃

Ref. 5015E-1130-B52A(300개 한정)

기능 시·분·초, 날짜

무브먼트 셀프와인딩 1315, 28,800vph, 35스톤, 5일 파워리저브

케이스 지름 45mm, 스테인리스스틸, 300m 방수, 솔리드백

가격 1800만원대




노블레스 오블리주 

블랑팡은 다이버 워치의 역사를 새로 쓴 브랜드답게 해양 보호의 중요성을 꿰뚫고 있었다. 그렇기에 1953년 피프티 패덤즈가 탄생한 후 다이버, 과학자, 수중 탐험가, 환경학자, 수중 포토그래퍼와 꾸준히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으며 ‘블랑팡 오션 커미트먼트(BOC)’를 진행해왔다. 다양한 활동을 후원해 해양을 보호하고, 이를 대중에게 알려 인지도를 높이려는 목적이다. 그 활동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의 전속 탐험가 Dr. 엔리크 살라의 프리스틴 시즈 탐험, 로랑 발레스타의 곰베사(Gombessa) 프로젝트, 이코노미스트가 조직한 월드 오션 이니셔티브, 매년 뉴욕의 UN 국제 연합 본부에서 열리는 월드 오션 데이 등이 포함된다. 또한 블랑팡은 정기적으로 피프티 패덤즈 BOC 한정판을 제작해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해양 보호 활동에 기부하기도 한다. 2008년부터는 BOC에 참여한 수중 포토그래퍼의 작품으로 꾸린 사진집인 ‘에디션 피프티 패덤즈’를 발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흑백 심해 사진의 대가 어니스트 H. 브룩스 주니어를 시작으로 40명의 포토그래퍼가 참여했다. 2018년 에디션은 어니스트 H. 브룩스 주니어에게 헌정하는 의미에서 흑백 사진만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블랑팡의 광고 비주얼로도 쓰였던 어니스트 H. 브룩스 주니어의 사진.


 
다섯 번째 곰베사 프로젝트
BOC는 2012년 이래 해양 생물학자이자 심해 포토그래퍼인 로랑 발레스타와 파트너십을 이어가며 그의 곰베사 원정을 후원하고 있다. 곰베사 원정은 기후 변화와 멸종 위기종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수집하는 해양 탐사 활동이다. 2013년, 아프리카 원주민이 ‘살아 있는 화석’으로 알려진 고대 어류 실러캔스를 부르는 이름을 프로젝트명에 지정하고, 실제 실러캔스를 찾아 인도양으로 첫 번째 원정을 시작했다. 올해 7월에는 벌써 다섯 번째 원정이 열렸다. 지중해에서 약 28일간에 걸쳐 진행된 이번 원정에서는 처음으로 포화 잠수와 완전 폐쇄식 재호흡기 방식을 조합하는 도전에 임했고, 성공적으로 수중 탐험을 마쳤다. 2020년 로랑 발레스타 팀은 곰베사 Ⅴ 원정의 성과를 전 세계에 공개할 예정이며 이전에 진행한 원정과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 영상, 전시, 그리고 책으로 기록한다.
 


X 패덤즈를 착용한 곰베사 프로젝트의 로랑 발레스타. 




2019 블랑팡 오션 커미트먼트 

지난 6월, 서울 논현동 SJ 쿤스트할레에서 ‘2019 블랑팡 오션 커미트먼트’ 전시가 열렸다. 블랑팡 다이버 워치의 풍부한 역사뿐 아니라 브랜드가 후원하는 수중 포토그래퍼의 활동과 해양 탐사 프로젝트를 생생한 사진과 영상으로 보여주는 특별한 캠페인이다. 2015년 바젤월드를 시작으로 미국, 러시아, 호주, 홍콩, 일본, 대만 등 세계 각지에서 열렸으며, 한국에서는 2016년 첫 전시 이후 세 번째다. 이번 행사에서는 곰베사 Ⅴ 원정도 사진으로 만날 수 있었으며 올해 피프티 패덤즈 신제품도 전시해 더욱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서울에서 열린 ‘2019 블랑팡 오션 커미트먼트’ 전시. 



전시장 입구. 어니스트 H. 브룩스 주니어의 흑백 사진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올해 신제품도 함께 전시했다. 



문의 블랑팡 02-3467-8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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