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시계
인류는 예로부터 정확한 시간을 알기 위해 노력해왔다. 고대에는 해와 그림자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했다. 하지만 날이 흐리거나 밤이 찾아오면 이 방법은 무용지물이었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방법을 갈구했고, 물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물시계의 시작은 기원전 1400년경 이집트 파라오의 물시계였다. 그릇의 작은 구멍을 통해 물이 빠져나가고 난 뒤 남은 물의 높이나 양을 재는 원리를 사용했다. 기원전 270년경 그리스의 크테시비우스가 발명한 ‘클렙사이드라’ 물시계는 제법 정확한 시간을 표시했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아는 기계식 시계는 14세기에 들어서야 등장한다. 태엽과 같은 자체 동력을 갖추면서 외부 환경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시계는 소형화와 사유화를 거듭했고 지금은 어디서나 숨쉬듯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계가 발달할수록 물은 시간과 멀어졌다. 무브먼트의 금속 소재, 그리고 태엽과 톱니바퀴의 원활한 움직임을 위해 주유하는 윤활유에 물은 치명적이다. 전기를 동력으로 삼는 쿼츠나 스마트 워치는 말할 것도 없다.
2012년 패트릭 베르도츠는 스위스 뇌샤텔에서 HYT의 문을 열었다. 물을 뜻하는 ‘하이드로(Hydro)’가 자동 연상되는 브랜드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을 자아낸다. 실제로 HYT는 기계식 시계와 가장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액체를 이용해 시간을 표시한다. 무브먼트의 기본은 기계식 시계의 일반적인 방식을 따른다. 다만 시침 대신 액체로 시간을 표시할 뿐이다. 그 바탕에는 대담하고 독창적인 콘셉트가 있었다. HYT가 창립한 2012년에는 전통적인 워치메이킹이나 아이디어로 승부를 벌이는 마이크로 하이엔드 시장 모두 이미 포화 상태였다. HYT는 가장 까다로운 소비자로 가득 찬 하이엔드 워치 시장에 안착하며 그들의 콘셉트가 유효했음을 입증했다.
흐르는 시간
액체로 시간을 표시하기 위해서는 보통의 기계식 시계에는 없는 부품이 필요하다. 우선 액체가 케이스 내부에 새지 않도록 영역을 제한해야 하고, 시침 역할을 하기 위해 액체가 ‘흐르게’ 해야 한다. HYT는 시계 내부에서 두 개의 벨로즈(Bellows, 풀무)에 글라스 소재의 지름 0.8mm 캐필러리 튜브(Capillary Tube, 모세혈관)를 연결했다. 벨로즈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면 캐필러리 튜브 속에 들어간 액체가 온도계처럼 움직인다. 액체는 투명한 것과 형광색으로 착색한 것, 두 종류를 함께 사용한다. 컬러 액체가 실질적인 시침을 담당하므로 두 가지 액체가 섞이거나 경계가 무너지면 곤란하다. 다행히 HYT는 분자의 반발력을 이용해 액체의 뚜렷한 경계를 유지했다. 또한 액체의 특성상 온도와 기압 차이에 따른 부피 변화를 최소화하는 조건도 충족해야 한다. 온도 상승 시에는 벨로즈가 팽창한 액체 일부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보조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대책이 없다면 액체의 부피가 증가해 정확한 시간을 표시할 수 없을 것이다.
HYT 콘셉트의 주인공인 액체는 자회사격인 프레시플렉스(Preciflex)에서 개발·공급한다. 그 외에도 세심하고 정교한 준비가 필요하다. 액체를 수용하는 글라스 캐필러리 튜브 내부는 코팅처리를 해 액체가 남거나 달라붙는 현상을 방지한다. 액체를 이동시키는 벨로즈는 견고하면서 유연해야 하는 데다가 시계 케이스 속에 장착할 정도로 아주 작은 크기로 완성해야 했다. HYT는 벨로즈를 합금 소재의 멀티 레이어로 구성해 난제를 극복했다. 이렇게 구성한 마이크로 플루이드 모듈이 HYT의 유체역학 시스템의 핵심이다. 높은 수준으로 마감한 기계식 무브먼트에 이식한 마이크로 플루이드 모듈은 HYT만의 독창적인 시간 표
시로 이어진다.
HYT 시계에 쓰이는 특별한 액체는 자회사 프레시플렉스에서 개발·공급한다.
유체역학 시스템을 연구하는 프레시플렉스.
H²0
2013년에 발표한 H²0는 HYT의 정체성과 콘셉트를 가장 충실하게 보여주는 모델이다. 케이스 바깥쪽으로 45°로 기울어져 대칭을 이루는 두 개의 벨로즈와 더불어 다이얼 12시 방향 밸런스 아래로 기어트레인을 배치했다. 개방감이 돋보이는 돔형 글라스의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캐필러리 튜브를 위치시키고 입체적인 아워 인덱스는 케이스 측면에 해당하는 자리에 두었다. 케이스백을 제외한 거의 모든 각도에서 HYT의 독보적인 유체역학 콘셉트를 감상할 수 있다.
다이얼에는 두 개의 인디케이터가 자리한다. 다이얼 3시 방향에는 크라운 포지션 인디케이터, 9시와 10시 방향 사이에는 온도 인디케이터가 있다. 크라운이 어떤 조작 모드에 있는지 나타내는 크라운 포지션 인디케이터에 비해 온도 인디케이터는 다른 시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기능이다. 그 이유 역시 HYT의 독특한 콘셉트에서 찾을 수 있다. 온도 인디케이터가 파란색을 가리키면 섭씨 15° 미만이라는 의미, 가능하면 조작을 피하는 것을 권장한다. 하얀색을 가리킬 때에는 조작해도 무방하다. 일종의 안전장치이자, 액체를 이용한 시간유희에 따르는 대가인 셈이다.
케이스백에서 볼 수 있는 두 개의 대형 배럴은 192시간(8일)의 넉넉한 파워리저브를 보장한다.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도 독특하다. 배럴을 일부 절개해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역할을 맡겼으며, 왼쪽 배럴이 로우(Low), 오른쪽 배럴이 하이(High)로 동력잔량을 표시한다.
박찬호 에디션
박찬호는 대한민국 최초의 메이저리거이자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투수로서 100승 이상을 올린 선수다. 그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야구선수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묵묵히 나아갔다는 점에서 HYT와도 공통분모가 있다. 최초, 도전, 성공으로 정리할 수 있는 둘의 연결고리는 HYT 박찬호 에디션이라는 새로운 시도에 불을 지폈다. 베이스 모델은 H²0, 케이스백에는 등번호 ‘61’과 ‘Park’ 그리고 박찬호의 사인을 넣어 그의 공로를 기념한다. 올해 12월에 만날 수 있다.
HYT LINE UP
HYT 전체 컬렉션은 크게 H0 시리즈에 해당하는 H0, H1.0, H20와 사각 케이스의 H3, 라운드 케이스의 H4 그리고 기간 한정판인 순나우, 스컬 등으로 이뤄진다. 물 분자인 H2O를 응용한 작명센스가 엿보인다. 가장 많은 모델로 구성된 H0 시리즈는 케이스 구조에서 공통점을 지니며, 라인에 따라 기능이나 다이얼 구성이 조금씩 달라진다. 엔트리라 할 수 있는 H0 라인은 벨로즈의 노출을 최소화해 다이얼 장식이 가능하다.
문의 타임팰리스 02-543-0974
게재호
64호(2019년 09/10월)
글
구교철(타임포럼 편집장)
Editor
유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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