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텍 필립 티에리 스턴 회장.
새로운 형태
“나는 항상 컬렉션에 사각형 시계를 넣고 싶었다.”
지난 10월 16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글로벌 론칭 행사장에서 파텍 필립 회장 티에리 스턴이 말했다. 그건 쉽지 않았다. 전체 시계의 85%는 라운드 형태다. 실제로 사각형 시계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가장 잘알려진 클래식 모델은 까르띠에 산토스와 태그호이어 모나코 정도일 것이다. 티에리 스턴 회장은 처음부터 자신의 시계를 명확하게 구상했다.
“전통적이지 않고, 좀더 스포티하며, 매일 함께할 수 있고, 티셔츠에 잘어울리며,수영할 때도 착용할 수 있는 시계”였다. 또한 트렌디해서 젊은 층을 겨냥할 수있는 시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파텍 필립 같은 브랜드가 독특한 형태의 시계를 출시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특별해야 한다. 놀라움을 안겨야 하는 동시에 우아함을 발산해야 하며, 브랜드 코드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 코드에 대해 티에리 스턴은 이렇게 말했다. “파텍 필립에는 특정한 코드들이 있다. 그 코드들은 문서화돼 있지는 않지만 우리 가치 중 일부를 구성한다. 우리는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아름다울 시계를 만든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하지만 너무 빠르지 않게 발전해야 한다. 수년간의 경험이 쌓여야 그 적절한 균형을 찾을 수있다.”
파텍 필립 큐비투스의 특징 중 하나인 평평한 케이스 Ref. 5822 모델에 탑재된 240 PS CI J LU 칼리버는 마이크로 로터(왼쪽)가 얇은 두께에 기여했다. (오른쪽) 플래티넘 소재의 폴딩 클래스프.
사각형인가, 팔각형인가
45mm의 큐비투스 형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티에리 스턴은 사각형이라 표현했지만 팔각형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텍 필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틸러스도 가장자리가 둥글게 처리돼 거의 원형으로 보이는 팔각형 베젤을 특징으로 한다. 큐비투스는 날카로운 직선 형태로 타협 없는 명료함을 강조하고 있다. 큐비투스 케이스에선 동일한 길이의 긴 직선 네개가 중심에 놓이며, 짧은 변 네 개는 둥근 모서리처럼 기능한다. 결과적으로 사각형 모양이 완성된 셈이다.
티에리 스턴의 명시적 요청에 따라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 케이스 프로필(무브먼트는 위에서 장착된다)은 매우 평평하게 설계됐다. 균형 잡힌 비율, 수직으로 샌딩 브러싱 처리된 베젤 상단과 폴리싱된 가장자리는 전체적으로 스포티하면서도 우아한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출시와 함께
파텍 필립은 큐비투스의 세 가지 모델을 선보였다. 그 중심에는 기술적으로 도전적인 Ref. 5822P-001 플래티넘 모델이 있다. 이 모델은 빅 데이트, 스몰 세컨드, 그리고 요일과 문페이즈 기능을 갖췄다.
Ref. 5821/1AR 001 은 스테인리스 스틸과 로즈 골드로 제작된 스리 핸즈 시계로, 케이스 일체형 브레이슬릿을 특징으로 한다. 베젤과 브레이슬릿의 중앙 링크는 로즈 골드 소재, 케이스 중앙부와 브레이슬릿 외부 링크는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다. 파텍 필립은 블루 다이얼을 바탕으로 이이색적인 디자인을 결합했다.
셀프와인딩 칼리버 26 330 S C는 센트럴 세컨드, 21K 골드 소재 로터, 그리고 스톱 세컨드를 제공하며, 시계 두께는 8.3mm로 매우 얇다. Ref. 5821/1AR 001 의 가격은 1억 530만원이다.
다크 그린 다이얼을 갖춘 5821/1A-001 모델은 Ref. 5821/1AR 001 과 동일한 칼리버가 장착됐다. 기능과 함께 45mm 사이즈, 8.3mm 두께, 30m 방수 사양도 동일하다.
두 시계 모두 다이얼 3시 방향에 날짜창을 지녔고, 막대형 시·분침이 특징이다. 핸즈엔 낮에는 흰색이지만 밤에는 녹색으로 빛나는 야광 물질을 덧입혔다. 그린 다이얼 모델의 핸즈는 화이트 골드로, 투톤 모델의 핸즈는 로즈 골드로 제작됐다.
Ref. 5821/1A의 스테인리스 스틸 브레이슬릿은 Ref. 5821/1AR의 투톤 브레이슬릿과 마찬가지로 크기를 조절한 후 고정할 수 있는 기능과 파텍 필립이 특허를 보유한 폴딩 클래스프를 갖추고 있다. 이 클래스프는 네개의 독립된 고정 포인트로 구성돼 더욱 견고하게 체결할 수 있다.
Ref. 5821/1A의 가격은 7090만원으로 큐비투스 중에서 가장 저렴하다.
인하우스 무브먼트
240 PS CI J LU는 빅데이트 창에서 십의 자리와 일의 자리가 항상 같은 높이에 위치하도록 보장한다.
큐비투스의 꽃, Ref. 5822P
Ref. 5822P-001은 세 가지 큐비투스 모델 중 단연 돋보이는 모델이다. 이 모델은 빅 데이트, 그리고 요일과 문페이즈라는 세 가지 추가 기능을 갖췄으며, 자정이 되면 이 모든 기능은 동시에 순간적으로 전환된다.
파텍 필립에 따르면 전환 간격은 18밀리초지만, 인간의 눈으로는 이를 구별할 수 없다. 큐비투스를 위해 새롭게 개발된 셀프와인딩 칼리버 240 PS CI J LU의 가장 큰 특징은 마이크로 로터다.
파텍 필립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다이얼 하단의 비대칭 디스플레이 배열이 익숙할 것이다. 노틸러스 Ref. 5712처럼 4시 30분 방향에 스몰 세컨드, 7시 방향에 문페이즈와 날짜 보조 다이얼이 배치됐다. Ref. 5712의 칼리버 240 PS IRM C LU 역시 1977년 개발된 셀프와인딩 칼리버 240에 기반한다. 필립 바라트가 이끄는 파텍 필립 개발팀은 노틸러스 문페이즈 모델의 무브먼트에서 쌓은 경험을 활용했다. 기본적으로 칼리버 240이 선택된 이유는 얇은 구조와 더불어 파텍 필립이 강조한 높은 신뢰성과 성능에 있다. 티에리 스턴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컴플리케이션 시계가 가능한 한 얇아지기를 원했다. 무브먼트 두께를 더 줄이도록 필립 바라트를 계속 설득했다. 결국 한계를 받아들여야만 했지만 날짜 디스크를 같은 높이에 정렬하는 것만큼은 타협할 수 없었다.”
빅 데이트의 비밀
큐비투스가 파텍 필립의 첫 번째 빅 데이트 시계는 아니다. 빅 데이트는 디스플레이가 일렬로 배열된 퍼페추얼 캘린더 Ref. 5236에 이미 도입됐다.
큐비투스의 빅 데이트가 특별한 이유는 티에리 스턴의 엄격한 지시를 통해 십의 자리와 일의 자리 디스크를 동일한 높이에 정렬한 것이다. 이를 위해 커다란 기술적 도전 과제가 수반됐다. 해당 구조는 동력이 많이 필요하고, 에너지도 충분히 저장해야 했다. 날짜가 요일 및 문페이즈와 동시에 전환되고, 빅 데이트의 두 숫자가 정면에서 볼 때 완전히 동일한 선상에 위치하도록 보장해야 했다. 이러한 요구 사항은 간단히 구현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면 빅 데이트 기능에만 104개의 추가 부품이 필요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새로운 칼리버 240 PS CI J LU는 기존 240 PS IRM C LU와 비교해 총 353개 부품으로 구성됐다. 두께는 4.76mm로, 기존보다 단 0.77mm 두껍다.
"큐비투스는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이 기억하기 쉽고 발음하기도 쉬운 이름이다.
복잡한 날짜 변경
빅 데이트는 단순히 크기만 큰 게 아니다. 일반적인 날짜 표시보다 훨씬 복잡한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다. 날짜 이동만 세 가지 종류다. 첫 번째는 단순 이동이다. 예를 들어 12일에서 13일로 넘어갈 때 일의 자리 디스크가 움직인다. 두 번째는 십의 자리 추가 이동이다. 19일에서 20일로 넘어가는 밤에 십의 자리 디스크가 추가로 움직인다. 세 번째는 31일에서 1일로 넘어가는 이동이다. 유일하게 일의 자리 디스크가 움직이지 않고 십의 자리 디스크만 이동한다.
파텍 필립은 톱니가 깎인 휠을 사용해 숫자 1이 고정되도록 설계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은 하루 중 언제든 날짜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복잡한 기술을 고려할 때 놀라운 특징이다. 더 간단한 날짜 메커니즘조차 특정 시간대에는 날짜 조정을 금지하는 경우가 더 많다. 파텍 필립은 이번 날짜 기능을 통해 총 6개의 특허를 출원했다. 새로운 240 PS CI J LU에도 한계는 있다. 빅데이트, 문페이즈, 요일은 크라운으로 조정할 수 없으며, 각 기능마다 하나씩 연결된 세 개의 푸셔를 사용해야 한다. 이를 위한 조정 도구가 함께 제공된다. 또한 이 시계는 애뉴얼 캘린더가 아니기 때문에 1년에 다섯 번 날짜를 수동으로 조정해야 한다. 날짜는 한 방향으로만, 즉 앞으로만 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간을 0시 15분에서 23시 45분으로 되돌릴 경우 날짜는 뒤로 가지 않는다. 티에리 스턴에 따르면, 이런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브먼트를 더 두껍게 만들어야 했다.
정확성과 파워 리저브
칼리버 240 PS CI J LU의 파워 리저브는 최소 38시간에서 최대 48시간이다. 두 셀프와인딩 모델에 사용된 무브먼트보다 각각 3시간 더 긴 성능을 제공한다. 셀프와인딩 모델에서는 확장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지만, 많은 동력과 높은 토크가 필요한 컴플리케이션에서는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평가된다.
미적으로는 파텍 필립이 항상 그렇듯 감탄을 자아낸다. 베이스 플레이트의 페를라주, 브리지의 제네바 스트라이프, 그리고 다이얼과 조화를 이루는 수평 장식 등 다양한 장식이 어우러져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백을 통해 눈부신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무브먼트에는 브랜드 이름과 함께 파텍 필립 실이 새겨졌다. 다른 파텍 필립 플래티넘 시계와 마찬가지로 큐비투스 Ref. 5822P에도 케이스 6시 방향에 작은 다이아몬드가 우아하게 장식됐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바게트컷 다이아몬드가 사용됐다. 셀프와인딩 모델과 달리 Ref. 5822P는 브레이슬릿 옵션을 제공하지 않는다. 플래티넘 소재가 손목에 지나치게 무겁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마린 블루 컬러의 패브릭 패턴을 적용한 복합 소재 스트랩과 에크루 컬러 스티치, 그리고 폴딩 클래스프가 조화를 이룬다. 착용감도 고급스럽다. 가격은 1억 5190만원.
실제 착용 모습
세가지 큐비투스는 손목 위에서 모두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다. 위에서부터 Ref. 5822P, Ref. 5821/1A,그리고 Ref 5821/1AR.
큐비투스라는 이름
티에리 스턴이 개발팀에게 사각형 시계를 개발하라는 과제를 내렸을 때, 그는 이미 이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뮌헨에서 그에게 큐비투스라는 이름을 어떻게 떠올렸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름은 시작하기 전부터 정해졌다. 처음부터 내 머릿속에 있었다. 큐브(Cube)는 프랑스어로 정육면체를 뜻한다. 그리고 노틸러스(Nautilus)라는 이름이 워낙 아름다워서 큐브에서 큐비투스로 연결됐다. 노틸러스와 큐비투스. 또한 큐비투스는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기억하기 쉽고 발음하기도 쉽다.”
라틴어와 프랑스어에서 큐비투스는 해부학적으로 팔꿈치뼈(척골)를 의미한다. 재미있게도 시계를 착용하는 손목은 팔꿈치뼈와 그렇게 멀지 않다.
스리 핸즈 모델에는 중앙 로터 방식의 인하우스 칼리버 26 330S C가탑재됐다.
착용하지 않고 판단하지 말 것
결론적으로 파텍 필립은 ‘형태 시계(Form Watch)’라는 주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관점에 따라 사각형 또는 팔각형으로 보이는 이 형태를 모두가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파텍 필립이라면 수요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큐비투스는 출시 직후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노틸러스만큼 긴 대기 명단이 생기진 않을 것이다.
큐비투스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파텍 필립에겐 이조차 낯선 일이 아니다. 2015년 칼라트라바 파일럿 트래블 타임 Ref. 5524가 공개됐을 때도, 1976년 최초의 노틸러스가 발표됐을 때도 거센 논란이 일었다. 파텍 필립 같은 브랜드가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일 때 응당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이런 시계는 실제로 차보기 전까지 판단을 보류해야 한다. 시계를 직접 손에 들고 나서야, 모든 세부가 얼마나 정교하게 제작됐는지, 상대적으로 얼마나 얇은지, 그리고 촉감이 얼마나 우월한지 느낄 수 있다. 크라운을 돌려 시침과 분침을 조정하는 일조차 특별한 경험이 된다. 크라운에 적용된 개스킷의 종류와 방식 덕분에 매우 부드럽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런 디테일은 수많은 특징에 가려지기 쉽다. 하지만 럭셔리 브랜드가 사랑받는 이유는 디테일에 있다.
Ref 5822P는 모든 파텍 필립 플래티넘 모델이 그렇듯 작은 다이아몬드가 장식됐다.
게재호
97호(03/04월호)
글
뤼디거 부허(Rüdiger Bucher)
Editor
유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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