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치가 오메가와 협업한 ‘미션 투 문페이즈’ 문스와치를 출시하기 전인 지난 2월, 스위스 봉꾸흐에 있는 시스템51 무브먼트 생산 시설을 방문했다. 이 최첨단 공간에서 스와치 CEO와 함께 아이디어와 협업, 지속 가능성이 갖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기계식 무브먼트로 구동한 최초의 스와치 시계는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선보인 ‘블랙 모션(Ref. SAB100)’과 ‘루빈(Ref. SAM100)’은 23스톤의 ETA 2842를 탑재했다. 2013년 스와치는 탄생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무브먼트인 ‘시스템51(SISTEM51)’을 공개했는데 5개의 사전 조립 모듈로 이뤄져 부품이 51개에 불과하다. 셀프와인딩 무브먼트 로터를 고정하는 나사도 단 하나뿐이었다.
스와치에 따르면 시스템51은 생산과 조립을 100% 자동화한 최초이자 유일한 기계식 무브먼트다. 크라운을 약 80바퀴 돌려 스프링을 완전히 감는 등 수동으로 와인딩할 수는 있지만 스톱 세컨드 메커니즘은 없다. 수동 레귤레이팅은 불가능하며 스위스 봉꾸흐에서 레이저를 사용해 자동으로 점검하고 조정한다. 90시간이라는 긴 파워 리저브를 자랑하는 이 무브먼트는 초침이 중앙에 있는 버전과 6시 방향에 스몰 세컨드가 있는 버전으로 나뉜다.
날짜창을 갖춘 스쿠바 피프티 패덤즈 4종을 위해 시스템51은 각각의 시계에 어울리는 날짜창을 지닌 4가지 버전으로도 탄생했다. 물론 날짜창 없는 모델인 ‘아틱 오션(Ref. SO35N100)’과 ‘안타틱 오션(Ref. SO35S100)’도 시스템51이 동력을 담당한다. 이들 모두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백을 적용했다. 현재로서는 수리가 불가능해도 결함 있는 무브먼트는 교체 가능하며, 나머지 부품은 전부 재활용할 수 있다.
무대 뒤에서
시스템51 매뉴팩처를 둘러봤다. 생산시설이 위치한 봉꾸흐는 프랑스 접경지역인 스위스 쥐라주 포랑트뤼에 위치해 있다. 2010년 스와치 그룹은 부품을 제작하는 자회사 코마듀와 미래의 시스템51 생산 시설 등 여러 회사의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이곳에 75만㎡ 규모의 산업 부지를 취득했다. 오늘날 무브먼트 생산은 획기적일 정도로 단순화 및 산업화에 도달했고, 여기서는 수백 대의 기계가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바이오세라믹 소재의 스쿠바 피프티 패덤즈 모델을 찍어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자동화를 이루었지만 봉꾸흐에는 여전히 약 800명의 직원이 8시간씩 3교대하며 시스템51을 생산한다. 무브먼트와 마찬가지로 생산도 모듈식이다. 향후 크로노그래프와 같이 새로운 모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면, 기존 모듈을 조정하고 계속해서 확장하는 식이다. 현재 매뉴팩처의 생산 능력은 1분에 무브먼트 5~6개. 생산량 측면에서 시스템51은 스위스 최고의 기계식 무브먼트로 손꼽힌다.
기계식 스와치 시계의 미래
무브먼트 모듈의 생산 자동화 외에도 주목할 점이 있다. 봉꾸흐의 ETA 무브먼트 공장에서는 디지털 인쇄까지 현장에서 가능하다. 덕분에 스쿠바 피프티 패덤즈의 로터에 인쇄한 슬러그처럼 로터나 기타 부품을 맞춤형으로 설계할 수 있다. 스쿠바 피프티 패덤즈는 스위스 발레(Wallis) 주의 주도인 시옹(Sion)에서 최종 조립하는데, 이건 곧 나토 스트랩을 체결하고 상자에 포장하는 작업만 사람 손을 거친다는 뜻이다.
최근 블랑팡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스쿠바 피프티 패덤즈의 성공을 목도한 후, 협업이 스와치의 기계식 무브먼트 사용에 미치는 영향이 궁금했다. 알랭 비야르(Alain Villard) 스와치 CEO의 답은 다음과 같다. “1990년대에 최초의 기계식 스와치 시계를 만들었다. 2013년에 출시한 시스템51은 하나의 혁명이었고, 거기에 안주하지 않을 생각이다. 고품질 셀프와인딩 시계를 반드시 더 많이 생산할 것이다.”
“51개 부품으로만 만든 셀프와인딩 시계? 스와치니까 가능한 일.”
스와치 CEO 알랭 비야르(Alain Villard)와의 인터뷰
| 오래 전부터 스와치는 긍정적 의미의 ‘파괴자’라 불렸다. 오메가와 협업해 문스와치를 발매한 2022년은 시계 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대단한 작품을 얼른 출시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커졌을 것 같다.
스와치 브랜드에 대한 압박은 언제나 존재해왔다고 생각한다. ‘스와치그룹’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1980년대 시계 산업 전체를 살려낸 브랜드라는 기대감이 절로 생긴다.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니라는 뜻이다. 스와치는 항상 혁신적인 브랜드가 되기를 원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창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빛나기를 바란다. 이 압박이 2022년 3월에서야 시작된 건 아니다. 다만 그 이후 브랜드에 거는 기대가 다시 커진 것도 사실이다.
문스와치 출시 이후 예전에 비해 더 많은 타깃 고객층에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스와치는 전 세계 더 나은 위치에 매장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브랜드 위상도 높아졌다. 성공 후에도 계속해서 스스로를 증명하고 정기적으로 혁신해 점수를 쌓아야 한다는 건 자명하다. 다시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고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야 하는 부담감이 싫지 않다. 오히려 기회이자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고객들도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혁신을 기대할 것이다. 이제 스와치는 품질을 보장하는 동시에 블랑팡 스쿠바 피프티 패덤즈와 같은 새로운 혁신으로 고객들에게 확신을 줘야 한다. “와, 이건 예상 못했다. 정말 차원이 다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말이다. 다음 단계도 물론 염두에 두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웃음). 우리는 아이디어가 넘치고, 매일 새롭게 도전하라고 스스로 주문한다.
| 아이디어 개발은 누가 담당하나.
두 가지 테마가 있다. 하나는 기본적인 스와치 시계다. 우리 디자인 팀은 재능이 몹시 뛰어나, 정기적으로 새로운 제안을 한다. 매주 함께 모여 브레인스토밍을 한 후, 팀에서는 트렌드에 따라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브리핑하고 새로운 컬렉션을 보여준다. 그 다음 ‘가능한 것이 무엇인가, 예술과 더 관련 있는 건 무엇인가, 기술 개발과 관련 있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선택을 한다.
다른 하나는 약간 기밀 사항이긴 한데, 협업과 관련된 테마다. 문스와치를 개발할 때는 닉 하이에크(Nick Hayek) 사장이 직접 구성한 작은 위원회가 있었다. 그가 신뢰하는 대여섯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지식이 풍부한 오메가 제품관리책임자 그레고리 키슬링(Gregory Kissling)도 있었다. 위원회는 스와치 직속 팀이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는 주제나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이 팀도 물론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 목표는 놀라움을 정의하는 일이다.
| 크리에이티브팀은 어떻게 운영하나.
우선 몇 가지 구조를 설정해주되, 창의성을 위해 너무 많이 개입하지는 않는다. 단, 너무 많이 설정하지는 않는다. 창의성은 존중돼야 한다. 예술, 스포츠, 라이프스타일, 음악 등 우리를 지탱하는 기둥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매년 예술 분야에서 진행하는 대규모 협업을 위해 최소한 1년 전부터 사전 준비에 들어간다. 나머지 부분은 충분한 여지를 남긴다. 반년에서 일년 정도 후의 트렌드 변화와 그에 따른 대응법을 알려주는 재능 있는 전문가들과도 협력하고 있다.
물론 아무리 자유도가 높아도 모든 아이디어를 시장에 출시할 수는 없다. 5~6개의 좋은 아이디어 중 1~2개만 선택해야 한다는 게 때로는 어렵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선택 받지 못한 아이디어를 사장시키는 건 아니다. 적당한 때가 오면 부활할 수도 있다.
| 이런 맥락에서 스와치는 종종 ‘긍정적인 도발’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무슨 뜻인가.
삶의 기쁨, 혁신, 스위스 메이드. 이 세 가지 요소와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도발’도 처음부터 스와치 DNA의 일부였다. 지나치지 않은 유머감각으로 고객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다. 물론 시도하지 않는 것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창조하고 싶다. 이것이 약간 ‘미친(crazy)’ 캠페인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1990년대에 처음으로 ‘시계 업계의 악동’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지금도 그렇게 불린다.
기술 분야에서도 놀라운 일은 일어날 수 있다. 2013년 출시한 무브먼트 시스템51도 긍정적인 도발이라 할 수 있다. 단 51개의 부품으로 구성한 셀프와인딩 무브먼트라니. 스와치 외에 그 누가 이런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오메가나 블랑팡과 같은 브랜드와의 협업도 마찬가지. 이때 스와치는 심미적이고도 제품 중심적인 방향을 택했지만 내게는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긍정적인 도발이었다.
작년에 출시한 ‘바이오세라믹 왓 이프(Bioceramic What If)’ 컬렉션도 또 다른 예로 들 수 있다. 1980년대에 제작한 정사각형 프로토타입을 기반으로 삼았고, 우리는 정사각형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시계 모양뿐만 아니라 축구공, 지구본, 도넛, 안경, 농구공마저 네모나게 만들었다. 이런 작업은 사람들이 ‘와, 저거 스와치구나!’라고 말하게 만드는 것만큼이나 도발적인 일이다.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고 고객을 웃게 만들 수 있는 아름다운 제품이다. 무엇이든 가능하다. 긍정적인 도발이 없다면 우리는 더 이상 스와치가 아니다.
| 과거 스와치는 전화기나 호출기처럼 시계와 비교적 동떨어진 제품들로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시계만 내놓고 있는데, 전략을 바꿨나.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예전에는 ‘스와치 비쥬(Swatch Bijoux)’나 ‘스와치 디 아이즈(Swatch The Eyes)’처럼 100% 스위스 메이드가 아닌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시계는 전부 스위스 메이드여야 한다. 현재 스와치와 플릭플락에만 집중하는 이유다. 둘 다 스위스 메이드고, 우리 DNA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10년 전 20개에 달하던 제품 라인을 조정하고 현대화한 결과, 현재 그 수는 훨씬 줄었다. 요새는 모든 시장에서 통하는 케이스 크기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5년, 10년 전보다 제품을 더 적게 출시하더라도 여전히 다양성과 차별화에는 여전히 자신 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일관적으로 본질에 집중해왔다.
| 그리고 더 어른스러워졌나.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을 유지해야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스와치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품질을 향상시키는 데 집중하자 문스와치, 스쿠바 피프티 패덤즈처럼 10년 전에는 스와치를 찾지 않았을 고객들도 자랑스럽게 차고 다닐 수 있는 고품질 제품이 탄생했다.
게재호
93호(2024년 7/8월호)
글
로저 뤼에거(Roger Rüegger)
Editor
서정윤
© Sigongsa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ll rights reserved. © by Ebner Media Group GmbH & Co. KG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