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무브먼트는 우선 태엽을 감을 필요가 없어 사람들이 선호하는 셀프와인딩이다. 스펙 시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무려 5일 파워리저브다. 최근 70시간대, 즉 주말 동안 착용하지 않아도 멈추지 않는 3일 파워리저브가 보편화되고 있는 지금 핸드와인딩이 아닌 셀프와인딩에서 5일 파워리저브는 상당히 긴 편에 속한다. 오리스는 시계를 한 개 이상 가지고 있는 애호가, 혹은 특별한 날에만 시계를 착용하는 사용자를 위해 편리하고 가급적 길게 지속되는 시계를 제작하고자 했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트윈 배럴을 탑재해, 각각 2.5일의 동력을 축적할 수 있다. 또한 메인 스프링의 토크를 최대한 줄여 동력을 절약하고 힘이 전달되는 부품에 압력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는 마모가 적은 강한 고효율 기어트레인을 설계하는 작업과도 목적이 일치했다. 일반적인 무브먼트가 메인 스프링에서 전달되는 에너지의 70%를 유지하는 데 비해, 칼리버 400은 85%를 유지한다고 한다. 이로써 칼리버 400은 5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안정적인 토크를 유지하고, 더욱 정확한 시간을 표시할 수 있다. 특히 롱 파워리저브를 구현하는 데 진동수를 낮추지 않고 28,800vph를 유지한 점도 포인트다.
안정적인 로터 시스템
오리스의 엔지니어들은 셀프와인딩 칼리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사전에 방지코자 했다. 가장 빈번한 문제 중 하나는 바로 로터의 볼 베어링 시스템이다. 무거운 로터의 지속적인 회전으로 인한 마모와 충격으로 인한 파손을 줄이기 위해 오리스는 나사로 고정하는 볼 베어링을 제거하고 금속 스터드가 윤활 슬리브를 통해 흐르는 저마찰 슬라이드 베어링 시스템을 개발했다. 사진을 보면 탄력적인 얇은 금속 기둥 사이에 로터의 축이 고정된 모습이다. 이는 기존 방식보다 덜 복잡하고 효율적이며, 마모와 파손 가능성이 훨씬 적다.
10년 보증
무엇보다 새로운 인하우스 무브먼트 칼리버 400의 보증 기간은 무려 10년이다. 오리스의 공동 CEO 롤프 스터더의 말이다. “칼리버 400은 우리가 연구한 기술과 최첨단 산업 기법을 사용해 제작한 높은 품질의 무브먼트다. 이는 엔지니어링 솔루션으로 얻은 결과로 10년의 보증과 10년의 서비스 주기를 제공할 수 있는 신뢰성이 있다.” 굉장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롤프는 이게 바로 오리스가 일을 하는 방식이라며 “오리스는 소수의 특권층이 아니라 시계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계를 만든다”라고 했다. 칼리버 400을 탑재한 시계를 구입한 고객은 MyOris에 등록하면 10년 동안 보증을 받을 수 있다.
플레이트는 멀리서 보면 질감이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샌드 블래스트로 마감했다. 로터는 새틴 피니싱 사이로 오리스의 방패 문양을 멋지게 새겼다.
오리스는 5년간 공들여 개발한 칼리버 400으로 범용 무브먼트를 완벽하게 대체할 계획은 아니라고 한다. 같은 컬렉션 내에 가격이 낮은 범용 무브먼트를 탑재한 버전과 이보다 가격은 높지만 고품질의 매뉴팩처 무브먼트 칼리버 400을 탑재한 버전을 동시에 선보여 선택의 범위를 넓히는 게 목표다. 무브먼트의 모습을 보면 전통적인 기준으론 마감의 수준이 높지 않다. 앙라주, 페를라주, 코트 드 제네바는 아예 없다. 단 플레이트와 브리지의 표면을 빠진 곳 없이 섬세한 샌드 블래스트 처리해 거친 부분은 전혀 없으며, 로터에만 특유의 질감이 느껴지는 새틴 피니시를 했다. 이는 기계적인 성능에 우선한 결과물이며, 덕분에 칼리버 400을 탑재한 시계의 가격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합리적으로 나왔다. 이처럼 칼리버 400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 오리스의 명성에 방점을 찍어줄 무브먼트다. 덕분에 브랜드의 가치가 단숨에 한 계단 상승했다 여기는 건 에디터만이 아닐 것이다.
첫 번째는 다이버 워치의 간판 아퀴스 데이트
오리스의 다이버 워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현대적인 디자인의 아퀴스, 고전적인 식스티파이브, 다양한 기능과 높은 스펙을 갖춘 프로다이버다. 그중에서 오리스는 칼리버 400을 탑재할 기념비적인 첫 제품으로 베스트셀러이자 다이버 워치의 간판 모델인 아퀴스 데이트를 선택했다. 브레이슬릿을 장착한 스틸 스포츠 워치의 인기가 높은 요즘 트렌드에 맞춘 적절한 선택이다.
아퀴스 데이트는 다이버 워치의 교과서적인 모습이지만, 오리스만의 디자인 요소가 더해져 화려함을 자랑한다. 외곽으로 갈수록 검은색으로 어두워지는 그러데이션 블루 다이얼은 셀리타 베이스 무브먼트를 탑재한 기존 아퀴스 데이트의 블루와는 다른 컬러로, 몇 년 전 환경보존 프로젝트 한정판으로 제작한 클리퍼톤과 비슷하다. 여기에 선레이 기법을 더해 조명과 장소에 따라 달리 빛나는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감싼 세라믹 베젤은 다소 어두운 블루톤을 사용해 뛰어난 일체감과 시계에 진중함을 더해준다. 베젤은 잠수 시간 측정을 위해 역방향으로만 움직이며 조작 시 약간의 흔들림이 있지만 적당한 클릭감을 제공한다. 아퀴스 데이트의 미들 케이스는 아래로 갈수록 작아지는 원뿔 형태다. 이는 손목에 착용했을 때 시각적으로 안정적인 형태일 뿐만 아니라 베젤이 케이스 위로 살짝 튀어나와 쉽게 조작이 가능한 기능적인 장점도 있다.
무브먼트 지름이 셀리타에 비해 약 5mm 커지면서 라스백도 눈에 띄게 커졌다. 옆면에 잠금 버튼이 달린 버클은 브레이슬릿과 잘 어울리면서도 깔끔한 디자인이다.
케이스는 미러 폴리싱과 새틴 피니싱을 번갈아 적용해 움직임에 맞춰 달라지는 반사광을 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브레이슬릿은 가운데와 양쪽 마디의 질감 차이로 인해 투톤으로 보인다. 다이버 워치답게 크라운은 양쪽에 크라운 가드로 보호된다. 아퀴스 컬렉션의 백미는 케이스와 일체감이 뛰어난 브레이슬릿이다. 일반적인 얇고 긴 러그 대신에, 브레이슬릿의 양쪽 마디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짧고 두꺼운 러그는 마치 브레이슬릿의 첫 번째 마디처럼 보인다. 시계를 정면에서 보면 러그리스 케이스처럼 베젤 아래부터 바로 브레이슬릿이 튀어나오는 디자인이다. 덕분에 케이스 지름에 비해 짧은 50mm의 러그투러그를 가지며 그만큼 손목에 자연스럽게 감기게 된다.
케이스 크기는 43.5mm다. 다소 크다 여길 수 있는데 다이빙 베젤 덕분에 시각적으로 작아 보이는 효과와 짧은 러그투러그가 합쳐져 일반적인 지름 42mm 정도의 시계와 비슷한 느낌으로 찰 수 있다. 두께도 13.3mm로 셀리타를 탑재한 버전과 큰 차이가 없다. 스크루 다운 크라운과 케이스백으로 방수 성능 역시 기존과 변함 없는 300m다.
새로운 디테일
외형적인 변화는 케이스백에서 찾을 수 있다. 무브먼트 크기가 기존 셀리타보다 훨씬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라스백의 크기도 커졌다. 덕분에 손목에 접촉하는 면이 커져 훨씬 편안한 착용감을 선사한다. 무브먼트는 표면 대부분이 플레이트에 덮여 있어 굉장히 심플하며, 은빛 케이스백과 잘 어우러진다. 기어트레인이나 기타 부속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지만, 밸런스 휠 너머로 실리콘으로 제작한 보라색 이스케이프먼트 휠과 푸른색 팰릿 포크가 신형 무브먼트임을 강조한다. 로터의 움직임은 배럴에 5일간 힘을 축적해야 하는 것치고는 살짝 가벼워 보인다. 어느 정도의 효율을 제공할지는 체험기에서 확인할 예정이다.
심플한 무브먼트지만 레귤레이터 파트는 화려하다. 접사로 보면 견고한 설계가 돋보인다. 밸런스 휠 너머로 보라색 이스케이프 휠과 푸른색 팰릿 포크가 인상적이다.
조작 방법은 일반적인 무브먼트와 같다. 1단에서 날짜, 2단에서 시간이다. 다만 시간 조정을 위해 크라운을 2단까지 당기면 핸즈가 튀는 현상이 있다. 시간 조정을 마치고 크라운을 다시 집어 넣어도 마찬가지다. 기어의 내구성과 관련해 일장일단이 있는 방식인데 사용자의 해결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시간 조정을 마친 후 크라운을 아주 살짝 뒤로 돌리면 힘이 빠진 것처럼 핸즈는 움직이지 않고 크라운만 아무 부하 없이 도는 구간이 있다. 이 상태에서 크라운을 다시 넣으면 핸즈가 튀지 않고 정확한 세팅이 가능하다.
아퀴스 데이트만의 섬세한 디테일은 나사에서도 살필 수 있다. 크라운가드와 러그에 브레이슬릿을 고정하는 큰 나사는 오리스 전용으로 제작한 Y타입 스크루다. 시계에 개성을 부여하는 대신 스스로 스트랩을 교체하고자 하는 사용자에겐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데 이번 신제품은 브레이슬릿 역시 도구 없이 케이스에서 분리, 조립이 가능한 퀵체인지 시스템이다. 이 역시 독창적이다. 스프링을 탑재해 지렛대 원리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스타일과 달리 안쪽 접이식 걸쇠를 손끝으로 열면 러그핀을 감싼 부분이 열리며 브레이슬릿을 위로 뺄 수 있다. 직관적이고 심플한 구조인 만큼 사용 시 헐거워짐이나 고장의 우려는 없다. 단 분리한 브레이슬릿을 다시 채울 때에는 바깥쪽, 즉 러그 사이로 위에서부터 넣어 조립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 부딪쳐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버클은 옆면 두 개의 버튼을 이용한 잠금 방식으로 아주 깔끔하다. 단 아쉽게도 아퀴스 데이트의 버클에는 길이 미세 조정 기능이 없다. 다이빙 익스텐션 시스템을 지원해 한 번에 1.3cm를 연장할 수 있지만 고급 브랜드의 다이버 워치에서 지원하는 슬라이드 방식의 미세 조정이 불가능한 건 조금 아쉽다. 대신 절반 사이즈의 브레이슬릿 마디가 존재하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툴을 이용해 조립된 홀의 위치를 옮겨 맞추는 건 가능하다.
새로운 브레이슬릿과 러버 스트랩은 도구 없이 탈착이 가능한 퀵체인지 시스템을 사용했다. 안쪽 덮개를 열어 분리하는 방식으로 아주 쉽고 흔들림 없이 단단히 고정된다.
오리스의 새로운 미래
신형 아퀴스 데이트 칼리버 400은 아퀴스 시리즈의 3세대로 볼 수 있다. 1960년대부터 다이버 워치를 제조한 오리스는 2009년 프로다이버를 시작으로 다시 한번 본격적인 다이버 워치를 만들기 시작했고, 2012년 드디어 컬렉션의 이름에 아퀴스가 등장한다. 그리고 2017년에 케이스와 크라운 가드를 다듬고, 핸즈를 지금까지 사용하는 디자인으로 교체했다.
신형 아퀴스 데이트 칼리버 400 브레이슬릿 버전의 가격은 390만원이다. 엔트리와 미들급 사이에 위치하는데 경쟁 브랜드의 인하우스 칼리버를 탑재한 시계들과 비교해서 상당한 우위를 차지한다. 무브먼트의 스펙은 최근 각 브랜드가 개발하는 차세대 워크호스 칼리버보다 높다. 굳이 아쉬운 점을 찾자면 무브먼트의 미적인 마감 부재와 다소 투박한 버클의 기능 정도인데 이는 럭셔리 다이버 워치에 비해 아쉬울 뿐, 500만원 이하라는 가격을 고려하면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놀라운 완성도다. 화려하고 섬세하게 마감한 다이얼과 케이스는 스포티하면서도 일상 생활에서 고급스럽게 착용하기에 적합하다. 사실 오리스는 몇 년에 걸쳐서 컬렉션의 전체적인 마감 수준을 끌어올렸다. 예전 오리스 시계만을 보고 최신 제품을 본 적이 없다면 달라진 품질에 꽤 놀랄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무브먼트를 탑재한 아퀴스 데이트 칼리버 400은 경쟁 가격대에선 완벽한 다이버 워치다.
아퀴스 데이트 칼리버 400을 착용한 모습. 아름다운 그러데이션 블루 다이얼이다. 세라믹 베젤은 짙은 파란색으로 어두운 곳에서는 검은색으로도 보인다.